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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김정일 생일특집 : 2회 김정일이 만든 3대독재 세습과 민생고

방송일 : 2018-02-13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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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김정일의 생일을 맞으며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에는 김정일이 만든 3대독재 세습과 민생고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나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력사상 최악의 식량난이 발생했습니다. 약 3년간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3백만명이 넘는 인민들이 굶어죽었고 그래서 “늑대와 여우만 남고 다 죽었다.”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늑대와 여우도 죽고 호랑이만 남았다는 말도 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민들의 생활이 어렵다는 것인데 이러한 가난과 고통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북조선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김일성 주석 시대를 그리워하는데 그때 생활수준이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주석시대는 1970년대 후반까지로 볼 수 있고 김정일이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던 1980년대부터 경제와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북조선 인민들 속에서 떠돌았던 대표적인 말이 있습니다.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는 잘 하시는데 중간층의 간부들이 잘못해서 인민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중간층의 간부들이 잘 못해서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말이였습니다. 1970년대후반 당의 유일적지도체제가 확립되면서부터는 김정일의 지시 없이는 총리가 1딸라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간부들에게 “동무들이 열가지를 하고 싶어도 내가 한가지를 하라면 한가지만 해라”고 말하던 시기였습니다. 1970년대는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지도체제에 걸려 잘못된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특히 1970년대는 김정일 당 조직비서가 문화예술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해서 분화예술분야의 권위가 아주 높던 시기였습니다. 내각과 과학연구기관, 지방 행정 및 당기관의 간부들과 지식인들은 경제에 투자하지 않고 문화예술분야에만 투자하면 어떻게 되냐고 걱정했었습니다.
또 1970년대 말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었는데 대부분 경제와 정치 문제였습니다. 1970년대에 김정일이 ‘70일전투를 당에서 맡아 하겠다’고 나서면서 경제분야에서 국가계획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또 1976년부터 전쟁준비니 뭐니 하면서 보름 배급에서 2틀치씩 떼고 주기 시작했습니다. 공업품 상점과 식료품 상점에는 상품이 줄어들고 월마다 공급하는 식료품, 공업품이 몇 달씩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후계자, 인민의 지도자, 조선로동당 조직비서라는 김정일이 제멋대로 경제를 쥐고 흔들고 처리하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와 인민생활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세운 것을 후회한 적이 여러번이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김일성 주석이 정말로 정치를 잘 해서 경제와 인민생활을 잘 이끌었던 것은 아닙니다.
북조선 력사상 경제와 인민생활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1968년, 69년 경이였습니다. 1960년대 말에 북조선 경제와 인민생활이 좋았던 것은 6.25전쟁과 련관이 있는데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후복구건설 지원의 결과였습니다.
1953년 여름, 다시말해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소련과 중국,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북조선에 막대한 전후 복구건설 지원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가치로 약 13억딸라에 달하는 지원을 해주었는데 쏘련은 평양을, 동부독일은 함흥을 맡아서 복구하는 방식으로 지원했습니다.
희천공작기계공장, 구성방직기계공장, 대안중기계공장, 락원기계공장 등 지금도 가장 중요한 대부분의 공장, 기업소가 그때 건설됐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움으로 전후복구건설을 마무리하고 사회주의 공업화까지 밀어붙였는데 그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1960년대 말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후복구건설 지원의 결과로 얻어진 성과는 모두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업적이 됐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의 효과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초인데 국가계획이 미달되기 시작하게 되자 추진한 것이 바로 70일전투입니다.
이처럼 북조선의 력사를 되돌아보면 1950년대 초 6.25전쟁으로 파괴된 북조선 경제가 살아난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지원입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차지해서 업적을 쌓은 사람은 김일성 주석이고 그 토대를 허물어 먹으면서 업적과 위대성, 정당성을 만든 사람은 김정일입니다.
1986년 경에 김일성 주석은 순천비날론 공장 건설장을 찾아와 마이크를 들고 연설을 하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김일성 주석이 했던 말은 “우리인민은 참 좋은 인민입니다”라고 했는데 이 말속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나라 경제를 말아먹었는데도 인민이 한결같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아들 김정일이 나라 경제를 말아먹고 자신의 권력을 빼앗아 갔지만 이미 꼭두각시가 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걱정과 서러움 모두 합쳐서 감정이 나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북조선경제가 완전히 망쳐진 것은 김정일이 1989년에 열렸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면서 나라 경제를 완전히 말아먹었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 경에 이미 북조선 경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되었고 1992년부터 고난의 행군의 조짐이 전국 각지의 지방들에서 나타났습니다.
북조선 경제를 망치는데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지도자는 바로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이 자신이 후계자로서, 인민의 지도자로서의 업적과 정당성을 쌓기 위해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20년간 경제를 망쳐놓았습니다.
오죽했으면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손자 김정남에게 “네 아버지는 경제를 몰라서 나라 경제를 망쳤다. 그러니 너는 경제를 공부해서 나라경제를 살리도록 해라”고 말했겠습니까. 김정일 본인도 1990년대말에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경제를 맡지 말라고 했다”면서 고난의 행군의 책임을 피해갔습니다.
결론적으로 북조선 경제는 사회주의 경제의 본질적 모순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김정일이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 경제를 망쳐놓은 것입니다. 경제를 망쳐놓았으니 인민생활은 더 말할 것 없는 것이고 오늘날 인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김정일입니다.
김정은 시대에서는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은 더 잘살고 인민은 더 못사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졌습니다. 김정은은 국가경제나 계획경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로케트, 대규모 행사에 푹 빠져있습니다.
어느정도 경제활동의 자유는 주었지만 대신 모든 것을 인민들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자체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돈과 권력을 가진자들이 경제활동, 장사 등을 독점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3대세습의 결과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김정은 우상화보다 중요한 것은 인민생활 개선이라는데 대해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8-02-13 (조회 : 2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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