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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특집방송 : 1회 남북스포츠교류의 역사

방송일 : 2018-02-09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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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특집방송 1회
 
남북 스포츠교류역사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 이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무슨 기억이구요? 바로 북과 남 최초로 구성된 탁구북남단일팀 코리아 말입니다.
또 하나가 있죠, 북남통일축구대회 단결된 민족의 힘을 보여주었던 세계청소년 축구단일팀 기억나십니까?  
스포츠는 지난 반세기가 넘는 분단기간동안 북과 남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 특집방송 첫 번째 시간으로 조선민족을 하나로 엮어주었던 스포츠교류분야 역사의 순간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지금 전세계는 남조선 강원도 평창이라는 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4년마다 열리는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 올림픽 성화가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만에 남조선땅을 찾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열리는 큰 잔치인만큼 열기는 굉장히 뜨겁습니다. 수많은 남조선 시민들,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가 환영하며 올림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북조선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씁니다. 바로 북조선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월 21일에는 북한사전점검단이 강릉과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고위급회담에서는 선수단을 어떻게 구성할지 의논을 했습니다.
남조선 정부가 내미는 손을 잡고 평창 동계올림픽이 안전한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북조선에서 보여준 것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조선은 다시 국제사회에 반가운 얼굴로 등장하였습니다.
북조선과 남조선을 비롯한 전세계 모든 국민들이 승부라는 순수한 개념으로 하는 운동, 순수한 마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도구가 통일로 향하는 징검다리 역할이 되어주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는
지난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경올림픽은 북남분단이후 첫 남북대결이 이루어졌기 떄문에 많은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세계육상계여왕인 신금단 대회를 하루앞에두고 올림픽 출전자격을 들어 출전정지시켰씁니다. 이 기간에 딸을 만나려 남조선에서 온 아버지는 짧디짧은 시간 단 7분동안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언론은 대서특필했던 이들의 만남은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남북관계는 극에 달했습니다. 1968년 북이 청와대를 습격했으며, 북과남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달았습니다. 그것은 북남스포츠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류의 대상이 아닌 원수, 싸워서 이겨야 하는 필사즉생의 다짐으로 만나야만 하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1974년 이란 테헤란 아시안게임  여자배구경기에서 만난 북남배구대표님은 서로 원수처럼 경기를 격하게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은퇴하고 국회의원이 된 황호동 선수는 다시 올림픽에 출전하여 북조선에게 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결구도는 1978년 방콩아시안게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양궁과 축구경기에서는 서로를 외면하고, 웃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굳어진 남북스포츠는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풀리게 됩니다. 북과남 선수단과 응원단 모두 한목소리로 통일의 노래, 응원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만찬시간을 통해 형님동생이라 외치며, 그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그 이듬해인 1991년 시작되었습니다.지바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서 북남 단일팀이 이루어진것이었습니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이루어진 단일팀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상황 등 어지러운 마음은 뒤로 미루고 북남단일팀은 승부에 전념하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자단식결승에서는 리분희선수의 우승, 여자 복식경기에서는 현정화, 리분희 팀이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조선반도깃발이 올라갔으며, 아리랑 노래가 온 경기장에 일본 지바땅에 울려퍼졌습니다. 헤어질 때 모든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작은 통일은 이루어낸것입니다. 뜻이 맞는 곳에서 한마음이 된다면 통일이 이루어지겠구나  지금도 현정화, 리분희선수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응원하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남북스포츠 교류역사는 탁구이외에도 축구라는 종목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북남 축구대표팀 선수단들이 1990년 10월 11일에는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0월 23일에는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도 북남축구팀이 대표팀이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에대한 결실히 또 이루어집니다. 1991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북남축구대표팀이 단일팀을 이루어 출전하게 된것입니다. 일본 지바에 이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코리아라는 이름이 전세계게 울려퍼진 것입니다. 이들은 탁구팀 못지않게 파죽지세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또한 남북화합의 모습은 롱구종목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북남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1999년 9월과 12월 평양, 서울에서 2미터 35 리명훈 선수가 골대위로 덩크슛을 하던 모습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남한국민들에게도 놀라웠던 기억으로 남고 있습니다.
2000년 새천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 북과남의 정상이 서로 만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0년 6월 13일, 북조선 김정일 위원장과 남조선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것입니다. 분단55년만에 이루어진 쾌거였습니다. 모두가 흥분에 마지 않았습니다.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뒤이어 2002년 9월 1990년 이후 12년만에 북남축구대 승패를 떠나 북남이 화합하는 축제의 장이 다시 열린것이었습니다. 하나의 공을 가지고 하나된 민족을 다시 보여준 것입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됩니다.
북과남의 단일팀, 북과남의 서루간의 스포츠 교류뿐만이 아닌, 올림픽 개회식때 북남 동시에 공동입장을 하게 된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북남문제 실마리를 올림픽 공동입장에서 찾는다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전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칭찬해마지않았습니다. 올림픽정신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부산 아시안게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북과남의 스포츠 교류는 선수단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진것이었을까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남조선땅에 북조선 응원단이 참가하여 남한 응원단들과 함께 경기를 응원한것이었습니다.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는 2000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에는 288명,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306명, 2005년 인천아시아 육상 선수권대회에서는 125명의 북조선 응원단이 남쪽으로 내려와 감동을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이제 하루뒤인 2월 9일 금요일 분단된 조국의 상황속에서도 우리는 스포츠 교류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륜기 아래 올해에도 우리는 하나를 이루어가야합니다. 우리는 지난 스포츠교류를 통해 남과 북은 신뢰를 형성하고, 대화를 이끌고 더 나아가 정치-경제-군사문제 해결의 분위기 조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스포츠는 정치, 경제, 군사문제를 뛰어넘습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시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한 남측정부의 노력에 대하여 방송합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8-02-09 (조회 : 125)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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