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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연평도 포격도발 특집방송 3부작: 1회 천안함 침몰에서 연평도 포격도발까지

방송일 : 2017-11-22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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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경, 북조선은 방사포를 동원해 남조선 서해 연평도의 해병대 기지와 민간 마을에 포탄 170여발을 발사해 해병대원 2명 사망, 16명 중경상, 민간인 2명 사망, 10명 중경상을 입히는 무력도발을 자행했습니다.

당시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 곳곳에 포탄이 터져서 불길이 타올랐고, 포탄을 맞은 집들은 검게 그을린 채 허물어져 군데군데 집터만이 남아있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조선개혁방송은 3회에 걸쳐 특집방송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북조선의 연평도 포격도발 준비와 발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직접적인 대규모 군사 공격을 남조선에게 가한 사건이었습니다.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 희생시킨 반인륜적 군사공격이자 국제연합 헌장과 국제 법을 위배한 전쟁도발 행위로 간주되는 심각한 도발행위였습니다.

같은 해 3월에는 어뢰공격으로 남조선 초계함을 격침하여 46명의 남조선 국군 용사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북조선은 6.25전쟁이후 40만건에 달하는 크고 작은 무력도발을 일삼으며 남조선과 동북아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위협했습니다. 그 결과 남조선과 미국, 일본 그리고 혈맹관계인 중국에게 마저 강력한 대북제재를 받으며 북조선 인민들에게 그 피해를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때 당시 남조선 텔레비죤에서는 북조선에서 날라온 방사포탄 공격으로 남조선 서해 연평도의 민간마을 살림집과 공공 건물, 해병부대가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생중계로 방송했습니다. 또한 이 방송은 전 세계 방송언론을 타고 국제사회에 북조선의 만행이 알려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2010년 11월 23일, 북조선 당국에 의한 연평도 무력도발입니다. 이 시기 겨울맞이 김장준비로 한창 바빴던 연평도 주민들은 백주대낮에 북조선이 쏘아댄 방사포 공격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6.25전쟁이후 직접 타격 공격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북조선은 국제사회의 맹비난을 받았지만, 북조선 당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조선의 선제공격으로 대응공격을 했다는 말도 안되는 선전으로 북조선 주민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러나 최근 남조선으로 입국한 탈북자 중 당시 황해남도 옹진군 15여단에서 군복무를 하던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김정은과 북조선 당국의 거짓에 대해 진실규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북조선은 연평도 포격도발을 위해 2009년 9월부터 “청년대장동지”이름으로 전연부대에 명령들을 하달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북자 증언1)

이후 연평도 폭격 직전에 정치사상학시간 때와 상학준비검열시간을 통해 “존경하는 청년대장 동지께서 연평도 포사격을 직접 지휘 할 것이다.”라는 중대장과 정치지도원들의 얘기를 전달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대장동지는 당시 김정은이 공개되기 전 부르는 칭호였습니다.
(탈북자 증언2)

이때 북조선 당국은 연평도 포격도발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남조선이 먼저 포사격으로 도발했기 때문에 청년대장동지가 대응사격을 하여 남조선 괴뢰도당들이 다시는 북조선에 얼쩡거리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증언3)
2008년 남조선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조선과 사이가 좋이 않았던 남조선을 향해 무력도발의 계획을 끊임없이 계획하고 있던 찰나 2010년은 북조선의 대남 무력도발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하고, 은밀하고, 강력하게 일어났던 해였습니다. 2010년 3월 26일 어뢰공격으로 남조선 초계함  침몰시키는 사건을 일으켜 국제사회로부터 맹비난을 받았고 국제 전문가 조사단까지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남조선 리명박 정부에서는 북조선 인민들을 위해 대북식량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북조선 당국은 그까짓 5만톤을 주나며 량이 작다고 받지 않았습니다. 더 크고 더 많은 양의 원조를 원했던 김정일은 남조선 정부를 협박하고 길들여서 북조선이 달라는대로 지원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북남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김정일 건강악화와 독재정권이 파국에 치닿을 때 자신의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웠지만, 그러할만한 성과가 없었습니다. 김정일은 2009년 1월 후계자가 된 김정은은 150일전투, 100일전투를 불렸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고 2009년 12월 1일에 실시한 화폐교환도 실패했습니다.

김정은은 내부적으로는 국가보위부 부장직을 맡았고 군대에서도 아버지 김정일의 권력을 대리하면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후계자가 갖추어야 하는 위대성과 정당성, 업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찾고 있던 상황이였습니다.

김정은의 위대성 교양자료에도 나오듯이 김정은은 포사격 술에 대해 논문을 썼다고 할 정도로 포사격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랑이 있었습니다. 김정은이 포사격과 관련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바로 군사적 충돌이 있어도 크게 확산이 되지 않는 서해해상에서 대남도발을 하는 것이였습니다.

북조선 당국은 2010년 1월과 8월 서해해상군사분계선 지역에서 포사격을 하면서 남측을 안심시키는 혼란 전술을 썼습니다. 그리고 2010년 9월 28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는 당 대표자회가 열렸고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대장의 군사칭호가 수여되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되었습니다.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얼굴을 공개하고 당과 군대의 최고위 직책을 맡으면서 김정은의 위대성과 업적을 쌓아야 할 필요가 더욱 절실해진 시점입니다. 그해 10월 10일에 김일성광장에서는 당창건 65주년 기념열병식이 열렸고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북남 리산가족 상봉이 열렸습니다.

겉으로는 북남회담이 열리고 리산가족 상봉도 하는 등 북남 사이의 관계가 완화되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평화관계로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리산가족 상봉이 열린지 약 20여일이 지난 후 11월 23일, 남조선의 정상적인 호국군사훈련을 김정은 업적 쌓기 수단으로 악용해 대응사격을 명목으로 남조선 연평도 민간마을 향해 방사포 공격을 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과 북조선 당국이 계획하고 조작한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입니다.

이상으로 “북조선의 연평도 포격도발 준비와 발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이시간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의 전개와 결과”란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경덕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 2017-11-22 (조회 : 8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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