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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김지영씨가 사랑하는 동생에게

방송일 : 2017-12-15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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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12장이나 되던 금년역서가 달랑 한 장남아 난방기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에 펄럭이는 걸 보니 왜서인지 만감이 교차됩니다.
열 두 달이 꽉 찬 역서처럼 희망도 꿈도 충만했건만 이제 달랑 한  장남은 이것마저 놓쳐버리면 어쩌나 싶은 허전함과 아쉬움이 느껴지는 밤입니다.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나요. 뒤를 보며 울지 말고 앞을 보고 웃어라. 그렇죠. 뒤만 보며 울었다면 아마오늘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지 샌 밤만 해도이제 10년이 다 되어오고 있지만 그래도 새로 운 땅에서 할 일이 생겼다는 것,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라는  진리도 덤으로 체득했습니다.
주절주절, 지나간 제 이야기만 하다 보니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를 찾아오신 분 소개가 늦었네요. 오늘저녁 우리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김지영씨는 북한에 계시는 동생 분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인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충청남도에 사는 김지영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사시절 구분이 따로 없는 따스한 남쪽나라 한국에서 살게 된지도 벌써 6년이나 되어옵니다. 
저는 늘 따스하고 늘 배고픈 걱정이 없지만 두고 온 혈육들을 생각하면 온전히 따뜻하고 배부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하루를 사는 것도 죽을 만큼 어려웠던 북한에서의 제 삶을 이제와 돌이켜보기도 끔찍합니다. 그래도 그 험악한 땅에 남은 제 동생이 못 견디게 그립고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로 간절합니다.
저는 겨울하늘에 날리는 흰 눈마저 쌀가루로 보이던 악몽 같은 북한, 그 곳에 아직도 살고 있는 동생에게 그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파랑새체신소를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생 순영이에게

순영아, 그 동안 잘 있었니?
너와 헤어진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그 긴 세월, 나는 너를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은철이 아버지는 살아나 있는지?
내가 떠나는 날,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죽지 말고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고 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목이 꽉 멘다.
순영아, 두 조카 은성이와 은화도 잘 있겠지? 이제는 퍼그나 커 모습조차 상상이 안 되지만 그냥 살아있기만 간절히 빌곤한다.
순영아, 나는 그 동안 너와 함께 떠나지 못한 것을 매일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매해 음력설이 되면 10년 전 그 가슴 아프던 이별이 생각나 잠까지 설친다. 양력설을 이틀 앞 둔 날이지만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다 눈은 펑펑 내리고 게다가 눈보라가지 치는 날, 너와 내가 설을 기다릴 식구들을 위해 왕복20리나 되는 산에 손수레를 끌고 가 싸리나무를 해다 팔았지.
그 땐 주변에 땔감이라고 생긴 것은 다 아궁이에 들어가도 모자라던 때라 어지간한 잡관목을 하려고 해도 몇 십리씩 가지 않으면 구할 수 없었지.
게다가 왕복 80리 되는 시장가는 길은 오르막길은 왜 그리 많았던지, 베아링도 못 넣은 손달구지가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굴러가니 너와 둘이 젖먹던 기운까지 다 내서 밀고 끌고 그렇게 숨은 턱에 닿게 올랐지.
그 날, 땀으로 젖은 옷 속으로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며 뚫고 들어오고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눈보라와 전주대의 울림소리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던지.
영순아, 겨우 고개마루에 이르니 뒤에서 밀던 너의 딸 은성이가 “이모, 좀 쉬어가요. 더는 못 가겠어요” 하면서 울부짖었지. 새벽3시에 겨우 풀죽 한 그릇을 먹고 떠나 온종일 헤맸으니 모두가 배가 뒷잔등에 닿고 사람몰골이 아니었어.
마침내 비틀거리며 눈 우에 드러누웠는데 은성이가“야, 저 하얀눈이 쌀가루라면 이 세상에 굶어죽는 사람은 없겠지. 이모부도 오빠도”이러는 바람에 우리모두 부둥켜안고 엉엉 울지 않았니.
가슴에 묻어두었던 서러움과 슬픔이 터져 피눈물처럼 흐르던 그 날, 은성이가 남긴 이 말이 지금도 내 귓가에 떠나지 않고 잊을 수가 없다.
영순아, 군에 간 네 아들 은철이가 금강사발전소건설장에서 굴을 뚫다가 한 개 중대가 굴에 묻혀 몰살당하는 아픔을 겪고 겨우 이틀 만에 구조를 당했었지. 그리고 그 야윌대로 야위고 몸마처 다친 아들이 약 한 알, 살 한 톨이 없어 굶어죽으며 이렇게 말했지.  
 “엄마, 이모, 나 입쌀밥 한 그릇만 먹으면 살아날 것 같아” 이 말을 남기고 눈도 감지 못하고 굶어죽은 은철이 생각을 하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 미칠 것 같다.  
배급이라는 통제수단으로 국민을 지배하던 북한이 배급을 주지 않고 국민들이 굶어죽어도 오히려 장마당이 자본주의 온상이라며 시장마저 통제하고 나서자 아사자가 매일 생겨나고 굶어서 퉁퉁 부은 사람들이 거리에 차고 넘쳤지.
사람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를 저주하게 되었어.
지금도 나는 그렇게 다정하고 밝던 사람들이 그렇게 맥없이 쓰러지면 울어줄 사람조차 아니 울 기운조차 없는 사람들이 그 시신들을 매일 손달구지에 실려 산으로 가던 그 끔직한 악몽을 가끔 꾼다.
나는 그 끔찍한 지옥 같은데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것도 신기하고 살아서 대한민국으로 왔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는다.
순영아, 그렇게 나라 전체를 거지, 꽃제비로 만들어 놓고 그들이 쓰레기장, 역전에서 무리로 죽어나갈 때 만민의 아버지라던 김정일은 외국에서 좋다는 음식과 술은 다 사다 먹으며 술과 여색에 미쳐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이런 건 그 당시 북한 사람들이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세뇌당한 북한 인민들은 바보와 같아 전혀 알 수도 없었지.
순영아,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그렇게 나무를 팔고 집에 들어오니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과 같은 비극이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었지.
타다 남은 솔잎이 부엌에 널려있고 가마잔등에 재가루가 하얗게 앉았는데 엄마는 반드시 누워 있었거든.
직감적으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고 이불을 벗겨보니 불에 타서 살이 희끗희끗 벗겨진 엄마는 이미 숨이 없었어. 하루 종일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며 헤매다 들어 온 너와 나는 울 힘도 없어 엄마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을 쳤었지.
근 10년이나 풀죽을 먹으면서도 장군님만 믿으면 꼭 잘 살 날이 온다며 오히려 우리 자식들을 달래시던 우리 엄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굶어죽었을 때도 며느리, 손자, 손녀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고 강한 모습만 보여주시던 우리 엄마, 종일 추운 산에서 헤매다 들어 올 우리를 위해 검불을 넣고 불이라도 때  주시려던 우리 엄마는 그렇게 억울하게 한생을 마감 하셨었지.
순영아, 그렇게 눈도 못 감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 동생, 조카들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듯 아프고 억울해서 못 살겠다.
사랑하는 동생아, 관도 없어 그 차디찬 언 땅에 엄마를 묻은 것이 천추에 원한이 되어 지금도 나를 이렇게 울린다.
살아서는 늘 배고프고 돌아가실 때는 뜨거워서 죽어야 했고, 죽어선 언 땅에 묻혀 꽁꽁 얼어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다. 네가 나를 대신해 제발 부디 제사라도 잊지 말고 잘 지내다오. 언니의 부탁이다.
인생의 갈피마다 매일 슬픈 사연과 가슴 아픈 일만 겪고 살아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한국에서의 하루하루가 매일 감동이고 너무 행복하다.
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고 이제는 그 소중한 행복을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 현실이 것이 너무 슬프다.
나는 복지가 잘 되어 누구나, 특히 노인들이 잘 사는 한국으로 너희 식구들이 다 함께 오지 못한 것을 천 백번 후회하고 있어.
내 사랑하는 동생아, 부디 죽지 말고 살아서 통일이 되는 날, 꼭 다시 만나자. 우리 다시 만날 그 날까지 너희 온 가족의 건강을 빌면서 안녕히.
충청남도에서 언니로부터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아픔도 그렇지만 슬픔도 면역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그 것도 가늠이 안 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들이 결국은 사랑하는 혈육과 고향을 등졌고 결국은 자유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북한은 분명 김지영씨 같은 분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반대로 그들이 체험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진실 된 이야기가 북에 남겨진 혈육들에게 도리어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김지영씨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소중한 인권을 다시 찾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북한에도 진실 된 자유와 기본 생존권이 보장되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김지영씨의 동생 분처럼 억울하고 슬픈 사람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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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5 (조회 : 34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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