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편지와 사연 > 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이성희씨가 그리운 언니에게

방송일 : 2017-10-27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오늘아침은 왜서인지 출근길이 즐겁고 가벼운 운동화 밑에 밟히는 늦가을 낙엽소리조차 정겨웠습니다.
갑자기 왜냐고요? 저희 방송국에서 독일 베를린에 세미나 참석 초청을 받았고 저에게는 탈북방송인의 한 사람으로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거든요.
저는 제인생의 많은 부분을 방송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꿈 많던 처녀시절, 하고 싶었던 수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당에서 저에게 부여한 방송원이라는 직업에 뛰어들었던 일이 어제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긍지높이 시작한 방송이지만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저는 마이크를 장사배낭으로 바꾸어 쥐고 어찌하든 굶어죽지 않으려고만 악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가 가장 사랑하던 그 마이크를 대한민국에서 다시 잡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두 제도의 방송을 경험한 저에게 국제무대에서 발언을 할 기회가 차례졌다니 한생을 방송을 한 보람이 있구나, 북한주민들의 귀가 되려고 열심히 한 지난 6년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뿌듯해 옵니다.
이제 그 다음 이야기는 베를린에 다녀와서 전하기로 하고 우선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이성희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이성희씨가 북한에 계시는 언니에게 어떤 편지를 쓰셨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충청남도에 사는 이성희입니다.
무정하기만한 차가운 북한 고향을 뒤로 하고 제가 한국에 온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무엇을 해서라도 죽지 말아야겠다는 본능적인 욕구에 떠밀려 선뜻 탈북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고난과 모험의 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남편이 죽어가도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나라지만 그래도 제가 태어나고 자랐고 아직 그 곳에 제 혈육들이 살고 있기에 그 나라를 미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도 오늘날까지 핵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북한, 저는 저 나라가 저 민족을 어디까지 데리고 갈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그리고 늘 불안한 북한에 두고 온 우리 언니 생각을 하면 참으로 가슴만 먹먹해 집니다. 오늘 제가 쓰는 이 편지가 우리언니에게 전달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 진정이 어린 이 편지가 언니에게 꼭 가 닿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보고 싶은 언니에게

언니, 그간 잘 있었어요?
언니와 헤어진지도 3년이 넘었어요. 그리운 형부, 조카영철이, 영숙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지요?
북한, 하면 고난의 행군때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기덕을 해 먹고 뒤가 메어 고생하고 미처 독을 뺄 사이도 없이 풀뿌리와 능쟁이를 매일 먹고 얼굴이 퉁퉁 부어가지고 목숨을 부지하던 생각이 먼저 납니다.
언니, 저녁시간에 우리 집에 찾아왔던 조카 영철이에게 죽 한 그릇도 못 먹여 집으로 돌려보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언니에게 미안하고 제 자식들을 살리겠다고 조카마저 외면해야 했던 제가 너무 민망하고 미워 눈물이 납니다.
언니, 그 무정하기만 하던 세월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굶고 병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절은 아이들이 퍽퍽 쓰러지는 때라 자신들 걱정은 하지 말라며 약이 생겨도 우리 아이들에게 넘겨주시던 착하고 어진 우리 부모님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자식들 탓 같아 그저 가슴을 치며 울어주는 것 밖에 더 다른 방도가 없었던 우리들입니다.
아마 그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비빔밥을 아직 한 번도 안 먹어요. 시래기를 먹는 집은 고급이던 때어서 바다풀이며 돼지 풀을 모조리 뜯어 죽을 쑤면 낟알이 어디에 있는지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그 풀죽이 우리들의 주식이었죠.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어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던 북한정권이었고 선군정치에 핵개발만 미친듯이 해 대던 북한입니다. 어니 맨날 아버지라고 자처하던 지도자는 자식들이 굶어죽었으면 최소한 가슴이 아프거나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나요?
그 수많은 어진 백성들은 지도자에 대한 원망 한 마디 못하고 그렇게 억울한 생을 마쳤어요.
언니, 나는 더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기가 싫어져 피눈물을 흘리며 두만강을 건넜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 내 살점 같은 딸은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어디로  갔는지 행방조차 모릅니다.
언니, 그 대 받은 충격과 고통, 가난의 악몽 때문에 저는 나는 지금도 우울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고 가슴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멍이 들었어요.
아니, 나뿐만 아니라 북한을 떠난 3만 여명의 탈북 인들은 가슴에 다 같이 멍이 들었고 혈육들을 잃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삽니다.
어니, 혹시 생각나세요?
언니가 중국여권신청을 하려고 보위부에 갔을 때 돈이 없어 보위부 잡일을 몇 달 동안 무보수로 해 주고 100달러를 뢰물로 주고서야 겨우 여행증을 발급 받았죠. 
그 나마 그 나마 여행증이 나왔는데도 보위부에서 1개월간 주의사항 학습을 시키고 1개월은 보위부에서 시간 끌고 겨우 1개월을 여행 갔다 오라고 하고 그렇게 겨우 갔다 와서도 보위부에 호출당하고 몸서리나게 고생만 하지 않았나요?
언니, 나는 지금 그 모든 지긋지긋한  규제와 통제, 강요와 감시가 전혀 없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어요.
이 나라는 이 모든 것이 진실로 보장되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인권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자유 민주국가입니다.
매일 몸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지만 매일 새삼스럽고 감사한 한국생활이지만 이런 행복과 자유를 언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미안하고 안타까워요.
대한민국은 본인이 노력한 만큼 보수가 정확히 차례지고 누구에게 나 기회가 찾아오거든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이 나이에 대학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해 보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사는데 우리조카들은 북한에서 분명히 출신성분 때문에 대학공부를 못하고 있겠지요.
그런 걸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그것 또한  북한의 현실이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픈 현실입니다. 
언니,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을 하거나 유공자도 아니지만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 본인이 결심만 하면 어떤 공부도 할 수 있어요.
언니, 보고 싶은 우리 언니 생각을 하면 내가 지금 한국에서 어떤 것을 해도 즐겁지 않아요. 매일 지겨울 정도로 먹는 이밥에 고기, 북한에서도 구경해 보지 못한 소고기, 신선한 물고기 갖가지 채소에 간식거리가지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린 이 한국의 현실을 이렇게 말로밖에 전해 드릴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언니, 누가 뭐라고 해도 언니와 나는 한 핏줄을 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육이잖아요. 그러니 내가 살아있는 한 언니를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언니 또한 이 동생을 절대로 잊으시면 안 돼요.
언제면 언니와 다시 만나 이 좋은 세상에서 함게 살아볼까,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어요.
여기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여권 한 장이면 언제든지 놀러 갈 수 있고 더구나 남한 땅 어디에서나 살고 싶은 고장에서 살 수 있답니다.
언니,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고 그 날은 멀지 않았어요.
그 날까지 부디 언니와 형부, 그리고 내 조카들 모두 아프지 말고 굳세게 살아 있어 주세요. 통일이 되는 그 날, 우리어니 다시만나 길고도 긴 회포를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갈 날을 그려 보며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요.
언니, 부디 건강하고 안녕히 계세요.
대한민국 충청남도에서 동생 이성희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죽 한 그릇도 죽다운 죽이 아니고 짐승도 먹지 못할 풀죽으로 죽지 못해 살아야 했던 북한에서의 삶은 사실 저도 돌이켜보기 끔찍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성희씨는 그 아픈 추억을 다시 하면서 북한 사시는 언니와 그 가족들에게 그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었던 드시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밥상위에 그 나라의 정치가 올라간다, 는 말이 있습니다. 못살고 배고픈 것이 어째서 성희씨 탓이 되겠습니까? 그 건 전적으로 인민의 어버이라고 자처하는 북한지도자들 때문이고 아버지를 잘 못 만난 자식들의 고통이 아니었을까요.
지금 이성희씨는 모든 자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되셨지만 아직도 북녘에 두고 온 언니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마음 뿐 이라고 합니다.
이제 남북이 하나 되는 그 날, 성희씨와 언니가 서로 만나 다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10-27 (조회 : 95)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