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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8회 -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여왕 빅토리아

방송일 : 2017-10-27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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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이끌고 발전시켜온 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성 인물을 떠올린 분은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존여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정말 열등하고,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래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평등을 운명으로, 또한 무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북조선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이들이 북조선 사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여러 여성 인물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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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볼 역사 속 위대한 여인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여왕, 빅토리아입니다.

지금까지 만나본 여왕들은 모두 세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업적을 이룬 군주였는데요, 오늘 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그 중 가장 탁월하고 찬란한 위업을 달성한 위대한 왕입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잘 쓰지 않는 “대영제국”이라는 표현은 바로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비롯된 표현입니다. 영국이라는 나라 이름 앞에 클 대(大)자를 붙이고,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라는 뜻의 제국을 붙여 사용한 것입니다. 유럽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를 만들었던 대영제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농사만 짓고 살아가던 유럽 사회에서 처음으로 동력 기구를 개발하여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류 역사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던 18세기 후반 19세기. 인류 문명의 한 가운데에는 대영제국이 있었고, 그 대영제국의 중심축에는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로 불리는 당시 대영제국은 오늘날의 미국에 견주어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1850년부터 1873년 까지는 ‘빅토리아 대번영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1848년 영국의 철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이후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그 중 선박 및 철로 등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생철 제품이 뛰어나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인도 등의 주요 철로 사업은 모두 영국이 담당할 정도였습니다.

1860년대 영국 인구는 세계 총인구의 2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세계 공산품 총 생산량의 50퍼센트를, 그리고 유럽 총 생산량의 약 60퍼센트를 담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해운 산업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세계 선박 적재량의 60퍼센트는 영국에서 등재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자유무역’은 영국 및 유럽 대륙의 해운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어 영국이 원료 수출입 대국, 공업제품 수출입 대국으로 자리잡으면서 세계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인도 및 동아시아의 방직무역을 독점하는 한편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과 호주의 양털 원료 공급을 장악했습니다.

또한 영국은 세계 최대의 외자 투자국이기도 해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무역총액과 맞먹는 무역액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1850년에 영국은 세계 총무역액의 20퍼센트를 점유했고, 공업제품에 한해서는 약 40퍼센트의 점유량을 보였습니다. 1830년에 6천 9백만 파운드에 불과했던 수출총액은 20년 뒤인 1850년에 이르러 거의 2억 파운드로 약 3배 가량 급증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세계 기계 생산량의 40퍼센트, 면사와 철강 생산량의 50퍼센트, 그리고 석탄 생산량의 3분의 2가량을 생산해 냈습니다. 1880년에 이르러 대영제국은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처럼 국력이 부강해지던 상황에서. 당시 권력을 장악했던 내각 대신들은 이러한 국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힘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 때 빅토리아 여왕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왕위 계승이 치열했던 영국 왕실에서, 마침내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것은 켄트 공작의 영민한 딸 빅토리아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왕위 등극이 불확실했던 어린 나이에서부터 이미 여왕의 덕목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매일 일기를 써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고, 이를 통해 자기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덕분에 그녀는 마치 전쟁터와 같은 왕실에서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로 성장하였고, 마침내 1837년 5월 24일 열여덟 살의 나이로 여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마침내 중대한 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항상 내가 말했듯이 용기와 결단력, 성실함을 갖추면 되느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셨으니 최선을 다해 책무를 이행할 것이다. 비록 어리고 경험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자신감이 충만하다. 나는 모든 일을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처리할 것이다.” 이것이 여왕 등극 당시 그녀가 모든 신하들 앞에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거침없이 진행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만국박람회’라는 행사였습니다. 만국박람회는 세계 최초의 산업혁명 국가로서, 그간 영국이 쌓아온 산업적 성취와 과학 역량을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영국은 전 세계에 자국의 강성함을 자랑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 공업의 실질적 발전을 이끌어 냈습니다. 남편인 알버트 공과 함께 준비한 이 박람회는 1851년 5월 1일 런던의 하이드파크 공원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수익만 해도 16만 파운드를 넘어섰습니다. 반 년 가량 박람회가 진행되는 동안, 약 600만 명의 인파가 드나들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인구 대 이동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또한 영국 왕실 최초의 인도 제국 통치자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모든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60년 동안 여왕으로 재위하였던 그녀는 재위 말년에 남편과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1901년, 백발의 할머니였던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이룩한 대영제국의 화려함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어떻게 보면 시대를 상당히 잘 타고 난 통치자였습니다. 여왕이 통치한 19세기는 세계 역사가 일약 발돋움하던 때였고,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의 업적이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통치자의 진가는 국가가 극한에 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이는 극도로 힘겨울 때뿐만 아니라 극도로 발전했을 때도 해당됩니다. 국력이 성장하고 있을 때 통치자가 어떤 자세로 있는가에 따라 그 나라가 통치자 한 사람의 전유물이 되는지 혹은 전 국민이 잘 사는 강대국이 되는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 절체절명의 순간은 대부분 남자들이 좌우해 왔습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역사의 황금기 한 가운데에서, “통치는 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세계사를 이끌어 갔습니다.

빅토리아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한 순간에 서 있는 청취자 여러분들도 하루하루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입력 : 2017-10-27 (조회 : 7)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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