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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조경민씨가 그립고 그리운 친구에게

방송일 : 2017-03-03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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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오늘아침, 제가 지하철에서 노인 석 앞에 서다 보니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대개가 80세 전 후의 어르신들이라 세상풍파, 쓰고 단 맛을 다 겪으신 분들이라 주변에 대한 의식은 별로 않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세상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제주여행 가셨다 아침 비행기로 김포공항에 내려 지하철을 타셨다는 80대 후 반의 한 할머니는 아, 글쎄, 우리 시누이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데 제 몸 건사도 어려울 텐데 아직도 그냥 새끼들 반찬 해다 주느라 정신이 없더라니까, 어이구, 지치지도 않는가봐. 이러시면서 90대가 된 시누이가 아직도 자식들 뒷바라지 해주시는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막상 그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 당신도 80대 중반이신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캐리어를 끌고 제주도며 일본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신다는 멋쟁이셨습니다.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희망이라지만 그게 현실이 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도 새삼스레 들었고 그 나이가 되어도 자식들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늙어가도 부모의 마음은 참,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끄덕여 졌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어르신들도 하루빨리 노인복지가 현실이 된 한국의 노인들처럼 이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아오신 조경민씨는 북한에 둘도 없는 친구에게 한국의 이런 현실을 알려주고 싶어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두 분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온 지도 벌써 5년이나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북한 밖을 벗어 나 본 적 없는 저였기에 탈북은 그야말로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하나의 사변이었습니다.
사람도 짐승처럼 길들여진다는 것을 저는 한국에 와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수령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며 제가 한 생을 살아 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나이에 나마 진실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어 다행이지만 북한의 우리 혈육들, 우리 동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도 속고 있고 그 들에게 평생 이용만 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편지를 쓰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를 제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제 편지가 친구에게 꼭 가 닿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보고 싶은 친구 성남이 엄마에게
내 친구 성남이 엄마,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눈을 감아도 푸른 파도 설레는 고향의 앞바다, 꿈결에도 못 잊어 달려가는 그리운 곳 내 고향!
물 맑고 물고기 많이 나는 동해바다, 그리고 강철공장들이 들어선 작지만 큰 도시 김책! 내가 고향을 떠난 지도 어언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내 친구 성남이 엄마, 나는 지금도 가끔은 조용히 눈감고 지나간 내 삶, 지나간 내 인생을 돌이켜보곤 한다.
성남이 엄마와 내가 남들보다 그렇게 친하고 가까이 지냈던 것은 무지하게도 애 태우고 속 썩이는 아들놈들 때문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주변에 수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자식들 때문에 속상하고 애도 태우고 오랜 세월 서로 곁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은 건 아마도 성남이 엄마 뿐 이였던 것 같아.
그 때는 친구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의미 있고 귀중한지를 다 알지 못했지, 그저 우리 둘은 서로 가깝다, 고만 생각하고 살았을 뿐이지.
내 친구 성남이 엄마, 2년 전에 우리 광수와 명희가 한국으로 무사히 왔어.
그 애들을 통해 내가 탈북한 뒤 그 동안 고향에서 있었던 일, 여러 가지 일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때 고생하는 성남엄마 이야기도 들었어. 
아들놈들 셋씩이나 되는데다 병석에 누운 남편 뒷바라지까지,  우리 애들 이야기만 으로도 난 성남엄마가 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어.
더욱이 우리고향은 북쪽인데다 바닷가라 바람도 많이 불고 겨울이면 얼마나 추워? 봄이 시작 되었다고는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살을 에이는 북방의 그 추운 날씨에 어떻게 겨울을 나고 있을까 걱정이 돼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아.
내 친구 성남이 엄마, 뭐니 뭐니 해도 겨울엔 땔감이 식량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곳인데 지난겨울을 무사히 보냈는지 그게 제일 걱정돼.
하루길이면 오고 갈 수 있는 나라에서 근 2만 리 여정을 에 돌아 동남아를 걸쳐 한국으로 오면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어.
내 친구 성남이 엄마, 그렇게 몇몇 달을 3국을 에 돌아 나는 드디어 한국에  왔어. 인생의 닻을 달고 떠난 내 인생 행로는 여기서 봇짐을 풀었고 내가 삶의 닻을 내린 항구는 내 나라의 남쪽, 대한민국이야.
먹고 살기도 죽을 지경인데 겨울이면 눈치기에 내 몰려 온 몸이 나른하던 북한 생각이 제일 먼저 난다. 여기는 도로에 눈이 와도 소금으로 다 녹이고 제설차가 눈을 치다보니 사람이 할 일이 없어.
게다가 무지개 같은 오색등이 밤이 새도록 거리를 밝히고 밤이 오히려 낮이 아닌가, 착각할 때도 있어.
정말 나는 한국에 왔기에 여기에서 인간답게 다시 태어났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어.
꿈이나, 재능, 희망이 있어도 철저한 계급과 계층으로 분류된 북한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죽을 때까지 불평 한 마디 하지 말고 북한정권에 충성을 다 하는 것 뿐 이였지.
나는 그 어떤 꿈도 희망도 실현 할 수고 어쩌면 진흙탕 속에 묻혀 버릴 번했던 내 인생이 드디어 광명을 찾았고 이제부터 내 인생의 전성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성남이 엄마, 나는 북한에서 마음대로 말해도 안 되고 마음대로 봐도 안 되고 마음대로 표현을 해도 죄인으로 살았다. 나는 성남이엄마가 지금도 그렇게 고달프게 살면서도 아직도 그 당, 그 나라에 충성만 강요당하고  세뇌되어 살아 갈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 가슴이 아파.
내가 아무리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성남엄마 귀에 들리지도 않을 테고 말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말이야.
성남이 엄마는 노래도 잘하고 활달하고 나와 함께 교회에 다니며 찬송도 마음껏 부르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내 친구 성남이 엄마, 지금 당장 전화라도  한 번 할 수 있다면 친구로서 내가 간절히, 절절하게 호소하고 싶어.  이제 더는 우물거리며 속고 살지 말고 한시 바삐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오라고, 그래서 나와 함께 남은 인생을 정말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말이야.
아무 것도 없이 빈 몸으로 온 우리에게 정부에서 집을 주어 사시절 더운물, 찬물이 나오는 온수난방 집에서 살고 있고 직업이며 교육이며 우리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계속 관심을 돌려주고 있어.
그리고 설이나 추석이면 고향이 그리워 울고 있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지자체나, 단체들이 잔치를 베풀고 넘치도록 선물도 안겨주지.
나는 보답 할길 없이 받기만 하는 이런 사랑이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릴 때가 정말 많아.
내가 쓰는 이 편지를 성남이 엄마가 받아볼 수 있다고 해도 이해하기는 어려울 줄 알아. 하지만 모든 공적을 자신들이 한 일로 돌리고 세상 만물의 통치자인 하나님을 자기라고 부르도록 강요하는 나라가 북한이 아니야?
내 친구 성남이 엄마, 북한이 그렇게 인간 생지옥으로 변한 것도 북한의 지도자들이 자기들만 우상숭배하게 하고 생각과 의욕을 가진 백성들을 철저하게 노예로 길들여 하나의 로봇처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야.
사람들을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로 만들고 세상과 철저하게 격리시킨 21세기의 야만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한 그 나라에는 절대로 희망이 없어.
나는 성남이 엄마가 하루빨리 이 진실을 깨닫고 나처럼 자유의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나는 오늘 내가 쓰는 이 편지가 성남이 엄마에게 직접 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나의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가 꼭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내 친구 성남이 엄마,  그 희망의 등대가 저 멀리에 보이니까 우리 함께 힘차게 노 저어 가자꾸나. 비록 몸은 서로 떨어져 살지만 우린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거야.
통일의 광장에서 우리 서로 만날 때까지 서로 건강하게 웃으며 살기를 바라며 오늘 편지는 이만 하련다.
안녕히, 서울에서 친구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한 마을에서 서로가 자식들 때문에 아파하며 오랫동안 친구로 살던 친구 분에게 고향을 떠나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신다는 조경민씨의 행복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다보면 사촌보다 가까워진다는 말도 있지만 깊은 사연이 별로 없어도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 는 말이 있죠.
그 만큼 각박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지만 조경민씨와 북한 사시는 경민씨의 친구 성남이 엄마는 각별해도 너무 각별한 사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래서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넘치는 행복에 대해 자유에 대해 친구에게 전해주고 그가 빨리 자유의 땅으로 오기를 그렇게 진심으로 권고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저 역시 경민씨의 친구 성남이 엄마가 이제라도 옳은 선택을 하셔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3-03 (조회 : 12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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