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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구영선씨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방송일 : 2017-10-13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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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높아가는 파란 하늘에 잠자리가 날고 있을 북녘 내 고향 생각이 간절해지는 가을입니다.
세상은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행복해지려고 무지 애를 쓰건만 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가을에도 북녘에서는 핵실험을 한다, 미사일을 쏜다, 그러며 왜 자꾸 저렇게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끄러운 세상이야기야 어찌됐든 가까이 다가온 겨울나이 준비로 우리고향 사람들은 부쩍 더 바빠질 것 같습니다. 겨울 한 철 굶지 않고, 추위를 견디려면 지금이 제일 중요한 때이니까요.
특히 북한 군인들은 이 가을에 도둑질을 해서라도 잘 먹어두지 않으면 겨울을 버티기가 어렵죠. 제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북한 군인들이 겨울잠을 자기 전 곰과 매우 닮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곡식이 밭에 있을 때 먹어두지 않으면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에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으니 말이죠.
대한민국사시는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실수도 있지만 이 방송을 듣고 계실 북한 분들은 아, 그거, 하고 한 번에 알아들으실 겁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구 영선씨는 고향에 두고 온 아들 생각으로 잠 못 이루실 때가 많다 시며 그리운 아들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구 영선씨가 아드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것인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생활 5년차 되어오는 구 영선입니다.
북한에는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제 굴을 찾아간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 짐승도 제가 태어난 곳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겠지요.
어쩌다 보니 먹고 살길이 궁해  제가 이렇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지만 제 고향 북한에 남겨진 아들을 생각하면 뜬눈으로 밤을 샐 때가 많습니다.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저도 태어난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평생 훌륭하고 고급 진 것을 바란 적도 구경한 적도 없는 사람이라 그렇게 요란한 삶을 바란 적 역시 없는 저입니다.
그러나 가장 서민적인 그 생활도 더는 유지 할 수가 없어 결국 사랑하는 고향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났지만 오히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생 꿈도 꿔보지 못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행복한 생활을 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아들에게 항상 미안합니다. 제가 쓰는 이 편지를 우리 아들이 꼭 받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 동안 잘 있었니?
그 간 어려운 살림을 이어 가느라 얼마나 고생하니?
내 며느리 찬수 에미도 잘 있는지?  내가 너희들 집으로  청진으로 갔던 지도 벌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산골에서만 살던 나를 데리고 너희들이 바다가로 놀러갔던 일이 엊그제 같구나.
나는 며칠간을 그렇게 너희 집에 머물며 바다에 가서 낙지를 끓여먹던 일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국에서처럼 백사장에 파라솔이나 가림막이 있는 것도 아니라 쨍쨍한 햇볕을 막는다고 너희들이 자전거 몇 대를 세워놓고 그 위에다 보자기를 덮어 그늘을 만들었잖아.
그리고 그 밑에 여럿이 모여앉아 술을 마시며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던 그 추억이 너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구나.
그날 어른들은 보자기로 덮은 그늘 아닌 그늘에서 술을 마실 때 아이들은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함께한 자리라고 그리도 좋아하며 이리저리 뛰던 모습도 눈에 선 하구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비록 유족하지는 못하고 조촐한 음식자리였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면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던 네 말대로 그 날, 우리는 몇 시간이나 그렇게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노래도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아, 그리고 그 날, 우리 며느리가 기계체조를 하던 동작을 보여주던 생각도 난다.
고달픈 생활 속에서 모처럼 만난 자리어서 더 잊혀 지지 않고 짧았지만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어. 비록 사진 한 장도 못 남겼지만 아버지의 기억에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야.
아들아, 이 아버지는 어렵게 한국으로 올 결심을 하고 정말 고생을 하면서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북한에서였다면 벌써 찬밥신세가 되었을 내가 한국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단다. 너도 알겠지만 행복하다는 말은 참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인가에 따라 행복의 가치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나는 행복도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본다.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라 억만장자들도 많고 돈으로만 쌓아도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도 있어. 대신 그날, 그날, 배 고픈 걱정 없이 자그마한 임대주택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더 자세히 보면 어쩌면 그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북한에서처럼 밥을 굶는 사람이나 헐벗은 사람은 없어.
더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면 인권을 존중받고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 알 권리, 누릴 권리, 보호 받을 권리를 가지고 인간답게 당당하게 살고 있다는 거다.
북한에서 태어나 한 생 인간으로써 권리와 참다운 자유를 누려 본적이 없는 나는 이 점이 제일 자랑스럽고 좋은 것 같아. 이제 아버지가 직접 체험한 생생한 체험의 일부를 전 해 줄게.
사랑하는 내 아들아, 개도 부자집개는 짓지 않는다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나 여유롭고 당당하게 산다.
너도 알겠지만 북한에서 아버지가 수술을 받은 적이 있지. 그런데 한국에 와서 그 자리가 터져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어. 한국은 의료기술과 의료기구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나라이고 우리보다 더 잘 산다고 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사람들도 한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정도이다.
물론 무상치료는 아니고 돈이 필요하지만 의료 보험도 있고 또, 나 같은 사람은 의료급여를 받기 때문에 정말 얼마 안 되는 돈만 지불하면 된단다.
나는 심장혈관이 좁아졌을 때도 스탠드시술이라고 눈에도 안 보이는 작은 관을 통해 피 줄을 넓히는 시술을 받았고 수술자리가 도졌을 때는 내시경 수술을 받았거든.
그게 또 뭐냐 하면 칼로 배를 열지 않고 메주콩만한 구멍을 통해 기계를 배안에 넣고 컴퓨터로 조작을 하면서 하는 수술인데 대부분 수술을 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수술을 했다고 해도 흉터도 남지 않는다.
너무 놀랍지 않니?
아마도 북한에 아직 그냥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이런 훌륭한 의료기술을 배우려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공부 하러 오고 연수도 온다. 나는 이런 걸 직접 체험하고 내 몸으로 직접 체험을 하면서 내가 조선 사람으로 태어난 긍지를 느낀다.
더 좋은 것은 2년마다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해 주는데 전쟁 시기에 헤어졌던 내 형님도 이 건강검진을 통해 대장암을 미리 발견 하셨단다.
지금은 조기 수술을 하면 거의 완치가 가능한 시대라 지금 네 큰아버지는 완치가 되어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
치과의료 기술도 너무 발전해 말로 설명이 다 어려울 정도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너처럼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고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에게나 기획 찾아온단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확실히 기회의 땅이고 특히 부모의 출신성분으로 사람을 구분해 평생 마음에 그늘을 안고살고 주을 때까지 발전은 꿈도 못 꾸던 북한보다 진정한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너와 함께 살고 있다면 이제 내가 바랄 것이 뭐가 더 있겠니?
나는 너와 함께 오지 못한 걸 늘 후회하며 다시 만날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북한정권이 무너질 날은 꼭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희망을 잃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 바란다. 너는 가장이니 아이들과 아내도 잘 돌보고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통일의 그 날에 우리 꼭 다시 만나 재미있게 살아보자꾸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너를 늘 그리워하는 아버지가. 서울에서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언제면 구영선씨가 사랑하는 아들과 다시 만나 흰모래 반짝이는 청진바다에서 즐거운 상봉을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떠 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북에 두고 오신 아버지의 시름처럼 가을이 깊어만 갑니다.
쌓여가는 낙엽을 보아도 북으로 날으는 철새들을 보아도 마냥 자식에게로만 달려가는 아빠의 이 안타까운 마음이 북한사시는 구영선씨아드님께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저도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리고 구영선씨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씩씩한 가장으로 잘 살아 주시기를 바라며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10-13 (조회 : 8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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