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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조선로동당 창건의 진실 4부작] 4회 조선로동당은 창건이 아닌 쏘련군정의 강요에 의한 합당이었다

방송일 : 2017-10-13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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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은 창건이 아닌 쏘련군정의 강요에 의한 합당이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개혁방송은 공화국 창건 72주년을 맞이하여 조선로동당 창건의 력사적 진실을 알아보는 특집 프로그람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네 번째 마지막 시간에는 조선로동당은 김일성이 창건한 것이 아니라 쏘련군정의 강요에 의해 항당된 당이라는 내용에 대해 알아봅니다.

북조선의 력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 세상천하에 김일성만한 사기꾼은 더 이상 없을 듯 합니다. 북조선 내부에서 볼 때 김일성은 김일성민족의 시조로서 북조선의 모든 것을 창조한 사람으로 단군시조와 같습니다.
북조선 당국이 단군릉을 요란하게 건축한 것은 단군이 민족을 만들었다면 조선은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북조선의 2천 5백여만 인민들 중에서 유치원 이하의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10월 10일이 무슨날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김일성이 조선로동당을 창건한 날이라는 것인데 력사의 진실은 김일성이 조선로동당을 창건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김일성이 조선공산당 이북 5도 책임자 회의에서 쏘련군정의 힘을 믿고 큰 소리치기 시작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로동당은 독자정당으로 창건된 것이 아니라 조선공산당의 북조선분국으로 시작해서 조선신민당과 합당하여 만들어진 당입니다.  1945년 8월 20일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을 창건하고 이영이라는 또다른 공산주의자가 ‘쓰딸린 그룹’이라는 단체를 조선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이렇게 서울에서는 장안파와 재건파 조선공산당 2개가 창설됐지만 이영은 세력 싸움에서 되지 않자 10월 초에 박헌영에게 흡수됩니다. 조선의 유일수도였던 서울에서는 8.15 해방직후 며칠만에 조선공산당이 창건되고 남북의 각 지방에 공산당 조직이 결성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쏘련군대가 진주하지 않은 평양에서는 공산당보다는 민족주의 지도자 조만식을 위주로 하는 건국준비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대신 8월 하순경에 원산에서 국내파 공산주의자였던 이주하에 의해 공산당 지부조직이 결성됐습니다.

이어 9월에는 오기섭이 함흥에서 공산당 함경북도 창설위원회를 세우는등 북조선에서는 지방조직이 먼저 조직됐습니다. 특히 북과 남이 분단되고 미군과 쏘련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북조선 공산당 조직들은 서울의 조선공산당 조직을 따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김일성이 쏘련 군함 뿌가쵸브 호를 타고 귀국했는데 그때가 9월 19일이였습니다. 김일성은 쏘련 군정 정치군관들의 지시에 따라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쏘련 군정의 도움으로 조선공산당 북쪽 지역 조직 창설에 주도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쏘련군정의 정치사령관이였던 레베데프 소장은 김일성을 내세우기 위해 북측지역 조선공산당 간부들의 모임을 계획합니다. 이렇게 해서 조직진행된 것이 바로 10월 5일부터 시작된 이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준비회의였고 여기에서 박헌영과 김일성이 처음만납니다.

10월 8일 쏘련군정 정치군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박헌영과 김일성은 밤새도록 론쟁을 벌리다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세우기로 합니다. 이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는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됐는데 10월 10일은 이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개최날짜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로동당 창건날짜라는 것인데 이날의 회의에서 김일성은 주도적인 발언을 했을뿐 북조선분국 책임비서도 아니였습니다. 김용범이 책임비서로 선출되고 김일성은 부비서로 선출됐고 발언을 했을뿐 회의를 주도한 것도 아닙니다.

10월 10일의 이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김일성이 책임비서가 되지 못한 것은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쏘련군정의 레베데프 소장도 김일성을 내세우려고 했지만 경력도 없고 리론수준도 약한데다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역량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의 박헌영이 위원장으로 있는 조선공산당 중앙은 10월 24일 평양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승인한다고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북조선 분국은 서울의 조선공산당 중앙의 지시를 받지 않았고 북조선 중앙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은 1945년 12월 17일에 열린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야 책임 비서로 선출됩니다. 김일성이 책임비서가 된 이후에도 6개월가량 지난 1946년 6월 22일에 진행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7차회의에서 북조선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북조선공산당을 창건함으로써 남조선의 박헌영이 위원장으로 있는 조선공산당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쯤 지난 7월 24일 조선신민당의 합당제의를 받아들여 북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 회의를 열고 신민당과의 합당을 론의합니다.
이때 북조선공산당과의 합당을 먼저 제의한 조선신민당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이 창건한 당으로 당위원장은 김두봉이였습니다. 김두봉은 1960년대에 종파로 몰려 숙청된 사람인데 김두봉은 1889년 3월 부산에서 태여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가했던 애국자입니다.

김두봉은 1920년 경부터 중국 상해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1942년에 연안에서 활동하면서 조선독립동맹에 가입합니다. 김두봉은 1942년 7월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이 되었는데 8.15 해방 후 조선으로 나와 1946년 2월에 조선독립동맹을 토대로 신민당을 창건합니다.
조선신민당은 중국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자들이 핵심이 되었으며 김두봉이 위원장이고 부위원장은 최창익이였습니다. 조선신민당이 먼저 북조선공산당에 합당을 제의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쏘련군정이 신민당에 합당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1946년 8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는 창립대회가 진행됐습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에서 북조선공산당으로, 다시 북조선로동당으로 당의 이름을 바꾸었지만 완전한 조선로동당이 되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남조선에는 아직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조선에서도 조선공산당이 인민당과 신민당이 합당해서 남조선로동당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렇게 된 것도 쏘련군정의 막후에서 조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5년 8.15일 조선이 해방되자 려운형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이 됐던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 려운형은 1945년 12월 건국동맹과 몇 개 작은 단체들을 모아 서울에서 조선인민당을 창건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인민당 내부에 공산주의자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던 려운형은 1946년 8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에 합당을 제안하게 됩니다. 서울의 남조선신민당은 평양의 조선신민당이 공산당에 합당한 이후 조선신민당 경성특별위원회가 당으로 개편된 것이였습니다.

이렇게 돼서 남조선에서도 조선인민당과 남조선신민당, 조선공산당이 합당을 해서 남조선로동당, 즉 남로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남조선로동당은 창건하자마자 미군정의 탄압을 받게 되는데 그 리유는 박헌영이 총파업을 선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남로당은 미군정의 탄압으로 지하로 들어가면서 공개적인 활동은 못하고 지하투쟁의 형식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1947년 2월 27일 미 군정청 경무국은 박헌영을 체포를 도와주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하는등 박헌영은 숨어 도망을 다니게 됐습니다.

박헌영은 1947년 10월 3.8선을 넘어 북조선으로 들어가 해주 등지에서 남조선로동당을 지도하다가 남쪽으로 은밀히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48년 5월 이후로는 북조선에 머무르면서 남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북조선 지도자 련석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1948년 북조선과 남조선에 모두 각각의 정부가 수립이 된 이후에도 북과 남에는 각각의 로동당이 존재했습니다. 1949년 6월 24일 남조선로동당이 북조선로동당에 흡수되고 나서 다시 일주일이 지난 6월 30일에야 조선로동당이 탄생했습니다.

조선로동당의 위원장은 김일성이였고 부위원장에는 박헌영, 허가이가 됐고 이승엽, 김삼룡은 비서로, 김두봉은 정치위원이 됐습니다. 이처럼 조선로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창건된 것이 아닙니다.
1945년 10월 10일에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수립됐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49년 6월말이 되어서야 조선로동당이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의 당이라고 부르는 조선로동당의 창건의 진실입니다.

이상으로 조선로동당 창건 72주년 특집방송을 모두 마칩니다.
청취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7-10-13 (조회 : 42)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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