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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독일통일 27주년특집방송 : ‘도이체 아인하이트’

방송일 : 2017-10-03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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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 27주년 특집방송 ‘도이체 아인하이트’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월 3일은 독일이 통일된지 2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시간에는 동서냉전, 베를린장벽붕괴,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특집 프로그람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인 우리들이 독일통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고민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2017년의 독일, 지구촌 시대속에서 독일이란 나라는 좀 특별한 나라입니다. 두 번씩이나 전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나라이며, 처절한 패전국의 상황을 인민들의 힘으로 이겨내고 현재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독일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26년전 이뤄진 통일의 역사가 그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는데요, 과연 26년전 그들의 나라에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까요?

첫 번째 우리는 1980년대 말 시대로 들어가보고자 합니다.
1980년대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서서이 끝나가고 동서인민들은 점차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축으로 하는 서방진영과는 달리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 진영에서 경제상황은 날로 어려워진 것입니다.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의 독재, 지속되는 동서냉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소련과 동구권 사회개혁을 위해 개혁·개방정책을 수립하였습니다. 전 세계가 뒤집어질정도로 파장은 컸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체이익을 위해 한 국가의 이익은 종속되고 주권은 제한된다는 소련의 외교정책, 일명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폐기처분된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종속관계는 한순간에 수평관계로 전환되었습니다.

두 번째, 여기서 우리는 동부독일사회 내부를 바라봐야 할것입니다. 현재 북조선의 상황과 비교하며 들으시면 좋을것입니다. 

이러한 소련,동구권 사회의 흐름은 독일사회 내에서도 큰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그 변화는 동과 서로 분단되어 있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부독일지도부는 동구권 사회의 변화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야당탄압, 여행자유제한, 선거조작을 강행하며 사회주의통일당의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동부독일정부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았으며, 당지도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고  ‘소련과 구별되는 동독특유의 사회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끝내 개혁을 거부한것입니다. 

동부독일 내 체제개혁을 위해 많은 정치, 사회단체들이 생겼습니다. 국가보위부 ‘슈타지’는 주민들을 비롯하여 정치,사회단체들을 빈틈없이 감시하였으며 사회주의통일당에 대한 비판론자들을 탄압하여 그들의 삶을 와해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89년 격동의 해가 밝아왔습니다.
동부독일시민들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의 영향으로, 내부적으로는 이미 정권반대모임들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폭탄의 뇌관처럼 건드리면 폭발할듯한 긴장감이 동부독일 사회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1989년 9월 동부유럽국가들이 국경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이로인해 수많은 동부독일인들이 국경을 넘어 서부독일, 서방유럽국가들로 탈출했습니다. 혼잡한 동부독일의 국내상황, 격화되는 시위현장속에서 동부독일에 있는 한 교회가 자유와 개혁을 외치는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패막이 되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물결을 이끄는 큰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곳은 바로 라이프찌히의 니콜라이 교회였습니다. 동부독일의 한 도시 라이프찌히에서 평화, 자유를 촉구하는 기도모임과 시위가 불꽃이 타올라 대도시 동베를린, 포츠담, 드레스덴을 비롯하여 동부독일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체제개혁, 여행자유로 시작되었던 시위의 목적이 점차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바뀌어져갔습니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찬양하고, 공산주의의 열렬한 지지자로 교육받았던 동부독일의 젊은 청년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정당들 또한 결성이 되어 반체제·민주화를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19년간 집권한 호네커 의장은 퇴진하고, 정치지도부는 뒤이어 동부독일시민의 여행자유화를 비롯한 나름대로의 개혁안을 약속하고 시행에 옮겼습니다. 이때,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바로 베를린장벽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동부독일 정부 선전담당비서였던 권터 샤보브스키는 동서부독일을 비롯, 전세계로 중계되는 여행자유화정책 발표회견장에서 실수를 하게 됩니다. 한명의 기자가 여행자유화가 언제부터 시작되냐는 질문에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지금, 바로’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티비를 본 수많은 동부독일주민들은 군인들의 제지를 받지않고, 베를린장벽을 넘어갔습니다. 40년동안 분단되어온 동부독일과 서부독일이 어느순간 갑자기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이제 우리는 베를린장벽 붕괴후 독일통일의 과정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통일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붕괴되서 인민들은 자유롭게 동서를 넘나들 수 있었지만 오랜기간 따로 발전되어온 각 정치,경제 사회제도를 하나로 통합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부독일정부는 무너진 사회주의 체제속에서 지속적으로 통일문제를 제기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서부독일 정부와의 대화를 해야 했습니다. 시민들은 두국가의 존속 및 개혁이 아닌 진정한 합일, 한국가로서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동부독일지역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부는 지도자간의 원탁회의를 성립하여 1989년 12월을 시작으로 1990년 4월까지 총 세차례의 정상회담을 진행하였으며 이 회담을 통해 교통, 통신, 재정 등 각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제들이 논의되었습니다.

1990년 7월 1일 경제, 화폐가 통합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부독일은 서독마르크화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사회적 시장경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사유재산의 허용, 자유경쟁, 인적 물적자원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2차세계대전 전승국들의 회담을 통해 최종 합의가 도출되었습니다. 동부독일을 관리하는 소련, 서부독일을 관리했던 미국-프랑스-소련간의 회담을 통해 독일은 완전한 주권을 이양받게 된것입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각 제도의 통합과정에서 이 회의는 더욱 불을 붙여주었으며, 동부독일은 1990년 9월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탈퇴하고 그에 이어 인민회의를 해산하였습니다.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류였던 동부독일이 사라지고 하나의 독일, 통일독일이 성립된 것입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 되었습니다. 45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고 다시 통일이 이루어진것입니다.

1989년부터 1990년 10월 3일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2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동부독일 국민들의 움직임은 이 위대한 통일역사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Deutschen Einheit. 이것은 동부독일 인민들의 힘을 보여준 전 세계적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은 인민들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으며, ‘우리가 인민이다’라고 외쳤던 인민들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통일을 꿈꾸고 자유를 꿈꾸는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물론 80년대 말 국제정세와 동부독일의 모습은 지금의 북조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유일의 평화통일을 경험한 독일통일을 보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유가 탄압받았던 국민들이 국가를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는 사실입니다. 통일의 가장 큰 힘의 원천은 인민들이 제일 먼저 자유의 삶에 눈을 뜨고, 힘을 합쳐 거리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꿈쩍 않던 동부독일 그리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북조선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 일까요? 아니면 충분히 꿈꿀 수 있는 일일까요?
북남간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독일보다 더 큰 국가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동아시아를 넘어서서 세계속에서 그 힘을 뻗어나갈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그 미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이상으로  독일통일 27주년 특집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조선개혁방송의 경덕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 2017-10-02 (조회 : 2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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