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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의 메아리

[조선청년의 메아리] 서강대 김주현 학생이 북한청년들에게 전하는 아랍의 봄

방송일 : 2017-06-28  |  진행 : 남북한 청년  |  시간 :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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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의 메아리]는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남한 청년들과 탈북 청년들이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코너입니다.

 
통일을 꿈꾸는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북한에 외치는 남한 청년들의 가슴 뜨거운 메아리!
 
오늘 방송 에서는
서강대 김주현 학생이 북한청년들에게 아랍의 혁명과 이를 일으키는데
시초가 된 튀니지 혁명에 대하여 전달합니다. 



사랑하는 북녘의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많은 분들이 모내기와 김매기와 같은 농사를 짓느라 고생하시겠네요.
이 시간에는 여러분에게 “아랍의 혁명”과 이를 일으키는데 시초가 된 뜌니지혁명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일명 ‘재스민 혁명’으로 알려진 뜌니지 혁명은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2010년 12월에 일어났습니다. 이 혁명으로 23년간이나 독재를 해오던 벤 알리 대통령은 외국으로 도망쳐 망명하게 되고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 혁명을 시작으로 하여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럼 뜌니지에서 어떻게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2010년 12월 17일 뜌니지 중부의 자그마한 도시 시디 부 지드의 한 거리.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모하메드 부아지지(26)라고 부르는 청년은 경제 악화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길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경찰의 단속에 걸리게 되고 벌금을 물게 됩니다. 게다가 팔고 있던 과일과 남새를 모두 빼앗기게 되죠. 뿐만 아니라 경찰은 그 청년에게 손찌검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하고 떠납니다. 그는 과일을 돌려줄 것은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지요. 부아지지는 결국 주정부청사 앞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합니다.
화염에 싸인 청년은 즉시 병원에 실려 갔지만, 다음해 1월 4일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찼습니다.
그의 죽음은 부싯돌이 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사망소식이 일파만파로 퍼졌고, 분노한 튀니지 국민들은 1월 8일 대통령 퇴임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자,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변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대규모시위가 단순히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 때문만이었을까요?  사실 이 큰 시위를 촉발시킨 데는 23년 넘도록 집권해온 독재 정권의 호화로운 생활이 폭로되고 인민들이 그 실상을 알게 되면서 분노가 폭발한 것도 한 몫 했습니다. 대통령 가족이 가지고 있는 돈은 50억 파운드, 북조선 돈으로 71조 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교까지 졸업한 한 청년은 먹고 살기 위해 뼈 빠지게 장사를 하다가 빼앗겼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인민이 굶던 죽던 상관없이 자기 배만 불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일화도 있답니다. 한 한국 여행자가 튀니지 여행을 가서 멀리서 봐도 꽤 웅장하고 큰 성이 보이기에 쌍안경으로 보려고 하니까 여행안내원이 기겁하고 말렸답니다.. "저긴 대통령이 사는 곳인데 함부로 그렇게 보다간 당신도 위험해요!” 그러자 여행자가 그 안내원에게 몰래 "당신은 대통령을 어찌 생각하세요?” 물었답니다.  말없이 차를 마시던 그는  "아까 당신에게 하던 말을 보면 알 거에요” 한마디만 했죠.. 민심은 이미 대통령을 떠났던 것이죠
바빠 맞은 벤 알리 대통령은 사태수습을 위해 “일자리 30만개를 만들겠다” “내각을 해산하고 6개월 뒤에 조기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여러 얼림 수를 썼지만, 성난 국민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시위대에 밀린 벤 알리 대통령은 일가족을 데리고 14일 밤에 몰래 해외로 도망쳤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이 결국 대통령을 해외로 내쫓은 기폭제가 됐습니다.
튀니지 사태가 터진지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혁명의 불길이 이웃나라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에짚트)에서는 무함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진행됐습니다. 이유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권력 세습, 경제적 빈곤이었습니다. 이집트 인구 8천만 명 중 40%가 빈곤층이고, 젊은 층 가운데 절반이 직장이 없을 정도로 실업률이 높았습니다. 국민 소득은 세계적으로 137번째로 낮았습니다. 그래서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30대 미만의 청년들은 “이집트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 갈아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집트가 왜 경제적으로 어려울까요,
60~70년대만 해도 에집트는 아랍 세계에서 희망의 등대였습니다. 영국과 식민지 해방을 위해 싸웠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언제나 아랍나라들 가운데서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에집트는 중동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스에즈 운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연간 선박 통과비용으로 만도 50억 달러를 챙기고 또 하루 9만 배럴 이상 석유를 생산할 만큼 천연자원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 자유와 개방을 시도하던 안와르 사다트가 암살되면서 권력을 잡은 무바라크는 개방정책을 펴겠다고 말만 했지 결국 입에 침 발린 소리였던거죠. 에집트는 매해 나라의 빚이 늘어났지만 대신 무바라크는 큰돈을 챙깁니다. 그는 미국의 원조로 매년 근 20억 달러를 챙겼고, 수에즈 운하 관세수입으로 50억 달러, 그리고 관광수입으로 100억 달러를 벌었다고 합니다. 이 돈은 대부분 권력 유지에 이용됐습니다. 더욱이 에집트 국민들을 성나게 한 것은 그의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자, 시위대가 수도 카이로에 모였습니다. 바빠 맞은 무바라크 대통령도 “빈곤층을 위해 임금을 인상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성난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경찰 탄압에 숨졌지만,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시위대는 “무바라크는 떠나라. 게임은 끝났다”고 외칩니다.
점점 기력을 잃은 정부는 무정부 상태로 빠져듭니다. 군대들도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무바라크에 등을 돌려댑니다.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무바라크 정권이 해체될 위험에 처했습니다.
바빠 맞은 호스니 무바라크는 급기야 2일 새벽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9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외에 리비아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카다피 대통령이 반정부군에게 체포되어 모두매를 맞고 총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답니다.
수령복, 대장복을 누리며 산다고 쓴 구호가 북조선 땅 곳곳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인민들의 살림은 어떤가요? 이밥에 고기국을 먹으면서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고 있는가요?
우리 인민들도 아랍나라들에서의 혁명을 보고 따라배웠으면 하는 바람을 표하면서 그만 마치겠습니다.

입력 : 2017-06-28 (조회 : 24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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