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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체신소] 이복녀씨가 사랑하는 아들 명수에게

방송일 : 2017-08-04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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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와, 본격적인 피서 철이 왔습니다. 피서철이라는 말에 갑자기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대한민국에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ㅎ 네, 늘 충성과 사상세뇌적인 선동만 받던 제게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실 이해조차 안 되는 말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저도 주말 휴식뿐 만 아니라 여름 피서 철이 오면 여름휴가지 선택문제로 행복한 고민도 하면서 사는 천상 대한민국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북한에도 보름이라는 휴가는 있었죠. 그런데 당당한 그 휴가도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신청해야 했고 그 것도 딱 필요한 가정사가 있을 때에만 가능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즐기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생의 참 멋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저 모든 것을 바치며 사는 것이 아직도 미덕인줄 알고 사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아, 그리고 여름휴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전 올해 여름휴가를 동남아로 정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마음이 애들처럼 너무 즐겁거든요.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이복녀씨는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하고 게다가 얼굴까지 아름다운 분입니다. 피서 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 생 일만 하셨다는 이복녀씨는 북에 두고 오신 아들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먹먹하다 시면서 사랑하는 아드님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한국으로 온지도 3년이 지났습니다.
사실 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은 집을 옮기거나 이사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생의 손때가 묻은 집과 살림살이 도구들, 정든 고향, 정든 이웃, 더구나 사랑하는 자식들 곁을 멀리 떠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습니다. 그런데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으로 하루아침에 이 모든 소중한 것을 뒤로하고 저는 이 나이에 북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처럼 믿고 살던 남편이 굶어서 돌아가시고 자식마저 병들어 어미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들마저 극심한 식량난으로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이 모든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제 눈에는 이제는 눈물도 마르고 가슴에 커다란 상처와 원한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 온 덕분에 제 인생은 다시 청춘을 찾았고 매일이 행복합니다. 저는 이 좋은 세상에서 함께 살수 없는 아들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명수에게

내 사랑하는 아들, 명수야, 그 동안 잘 있었니?
엄마가 너와 헤어진지도 벌서 3년도 넘었구나.
아들아,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앉으나 서나 엄마 눈에는 우리 아들모습 뿐이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 알고 싶다.
돈은 조금 보내 주었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북한에서 무슨 장사인들 마음 놓고 하겠냐만 그저 날마다 근심뿐이다.
아들아, 너희 아버지가 한 생 군 복무를 한 대가로 철갑모가 넘치게 받은 훈장을 두고 굶어서 돌아 가신지도 벌써 20년이 되었구나. 한 생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정부에 대고 손가락질 한 번 한 적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그렇게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죽어가던 북한, 갓 태어난 손자 입에 떠 넣을 미음 한 숟가락이 없어 눈앞에서 죽어간 우리 손자들, 엄마는 두루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억울하고 가슴이 찢어진다.
그리고 그처럼 소중한 사람들이 정부의 무능력과 잘못된 정치 탓에 죽어서도 관도 없이 씨앗을 땅에 묻듯 비닐에 쌓여 북한말로 직파가 되어 저 세상으로 갔다.
그 때 엄마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북한 백성은 당연히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도 말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 하는 줄만 알았어.
사랑하는 아들아 그런데 세상은 내가 북한에서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는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에 와 보니 너희아버지처럼 30년을 군 복무하신 사람들은 달마다 엄청나게 많은 연금을 받으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더라.
너희 아버지도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셨더라면 적어도 굶어서 돌아가실 일 같은 건 없었을 텐데, 말이지.
아들아, 한국에서 7월과 8월은 피서 철이라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나 가족끼리 휴양, 휴가를 떠나느라 난리들이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너는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일이라 상상이 잘 안 갈 수도 있어.
아들아, 생각나니? 엄마가 북한에서 직장에 다닐 때 노력혁신자로 뽑혀 동해바다로 표창휴가를 갔던 거 말이야.
한 생 직장밖에 몰랐던 나에게는 그 것이 최고의 선물이고 꿈같은 일이였어. 북한에서는 정말 미친것처럼 당에 충성을 해야 그 정도의 휴가라도 갈 수 있었지만 여기는 전혀 그렇지 않단다.
대한민국사람들은 주 중에라도 휴가를 하루만 신청하면 2박3이로 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다녀 올 수 있고 명절까지 낄 때면 거의 1주일을 마음대로 놀러 다닐 수 있어.
북한은 나라 안에서도 제한 구역이 너무 많고 이름난 명승지, 휴양지도 국가에서 승인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감옥 같은 나라다.
나는 철마다 딸과 같이 좋은 구경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며 산다. 게다가 늙은이 혼자 산다고 나라에서 수급비를 달마다 주지, 아파서 병원가면 거의 무료나 다름없이 치료받고 약도 공급 받는다.
그 뿐 인줄 아니,  지역 복지관에 나가면 맛있는 밥도 주고 즐겁게 살라고 노래교실에도 다니게 하고, 또, 매 번 새 영화도 공짜로 보여준단다.
참, 얼마 전에 카카오 톡을 하다 보니 친구가 귀여운 어린애 사진을 보내 왔더라. 그 사진을 보니 우리손자가 생각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나는 우리 손자들 때문에 간식이 하나 생겨도 선뜻 입에 넣을 수가 없고 이쁜 옷을 입고 지나가는 애들을 보면 꼭 내 손자 같아 다시 쳐다보곤 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엄마는 배고픈 걱정 추운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살지만 늘 이렇게 너희들 생각만 하면 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다.
아들아, 한 민족이 서로 갈라져 원수보다 더 증오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니?
우리처럼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적어도 서로 왕래를 하고 편지도 주고받으면서 살지.
아들아, 엄마도 적은 나이는 아니라 요즘은 이러다 영원히 내 아들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우리 죽기 전에 꼭 만나자. 
엄마는 매일 그 꿈이 현실로 되는 날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열심히 산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보건소에 다니고 적당한 운동도 하고 늘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살려고 한다.
아들아 북한이 어떻게 어려운지는 잘 알지만 그러니까 우리 아들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어려울 때일수록 가정이 우선 화목해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엄마는 우리손자, 며느리 다 같이 서로 아끼고 배려하면서 그렇게 살아주었으면 좋겠어.
남 보다 더 잘 살기보다 남만큼 만 살면 되니까 너무 욕심 부려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으면 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 명수야,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되면 휴식도 적당히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이니까 가족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기 바란다.
엄마는 요즘 올 여름 피서는 어디로 갈까, 생각 중이다.
좋은 곳에서 더운 여름 지친 몸을 잠시 쉬면서 다음계절을 또 준비해야지.
우리 아들도 건강한 몸으로 여름을 잘 이겨내기 바란다.
사랑하는 내 아들,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 담에 엄마가 한국에서 사는 재미난 이야기 또 전해줄게  잘 있어라. 안녕~ 서울에서 엄마가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평생의 때 묻은 세간 살이, 사랑하는 자식들과 이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복녀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었습니다.
배고프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 소중하고 정든 고향을 떠났지만 아직 그 땅에 사랑하는 아들이 살고 있기에 미워 할 수도 없는 고향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넘쳐나는 저 쌀 한 줌이 없어 사랑하는 남편과 손자들을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이복녀씨의 사연이 어쩌면 제 이야기 같기도 해 더 가슴을 아프게 파고드는 밤입니다.
핵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백성들을 다 잃는다면 그런 나라는 지켜서 무엇을 할까요? 이민위천,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북한에선 오늘도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은 계속되고 있을 텐데요. 이복녀씨의 아드님이 이 편지를 들으신다면 부디 어머니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8-04 (조회 : 7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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