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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강성옥씨가 사랑하는 둘째딸에게

방송일 : 2017-07-14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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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 방송국에서 얼마 전에 강원도 고성군을 다녀왔습니다.
제 고향이 바로 지척이어서 그런지 고성 통일 전망대는 언제 보아도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따뜻함과 정다움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뻤던 일은 고성군이 이 번에 통일전망대를 새로 옮겨지으면서 그 곳에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북한에 보내는 편지사연을 넣을 수 있는 우체통을 만들어 주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통일을 바라는 대한민국사람들의 열정은 북한에 비할 바 없이 높다는 것을 한국에 살면서 저는 몸으로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경기도 파주군 오두산 통일 전망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 전망대, 그리고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에 위치한 애기봉 통일전망대 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로 이런 저런 사연 때문에 고향으로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북한에서는 어떤 사연으로든 한국으로 간 사람들이 있는 가족은 반역자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몰고 그 가족들은 대를 이어 노예처럼 머리를 숙이고 삽니다.
그러나 오늘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한민국으로 온 북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부자도 되었고, 북한에서는 감히 꿈꿀 수도 없던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강성옥씨도 자유대한민국에서 세상에 부럼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인데요,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특히 둘째 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북한을 떠난 지도 이제는 13년이 되었습니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았을 이 긴 세월, 북한 고향을 생각하면 저는 늘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살붙이 같은 자기 자식을 떼어놓고 보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산 사람이 오히려 더 무서울 지경이던 북한에서 더는 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북한을 떠났던 저였습니다.
매일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고 극심한 기아로 거지보다 못한 살림살이,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반드시 돈을 벌어다 나도 한 번 잘 살아보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길이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꿈에도 다시 가고 싶은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고 매일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이 편지가 두고 온 고향의 둘째 딸에게 꼭 전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꿈에도 그리운 둘째 딸에게

사랑하는 딸, 옥희야, 그 동안 잘 있었니?
엄마가 고향을 떠난 지도 이젠 13년도 넘어간다.
아픈 네 아버지와 굶어 죽기 일보 전인 처참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기어코 돈을 벌어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두만강을 건넜다.
더군다나 집안 꼴이 도저히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니 네 언니가 어마보다 먼저  돈을 벌어 보려고 중국으로 가지 않았니.
나는 네 언니도 찾고 나도 돈을 좀 벌어보려는 순진한 꿈을 가지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옥희야, 중국에 들어갔다가 한 번 북송 되었던 네 언니가 교화소에 가게 되었던 생각이 나지? 그 때 우리 집은 째지게 가난해 비지죽도 제대로 먹고 살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네 언니를 살리겠다고 남의 돈까지 빌리다 보니 하루가 멀다하게 빚 독촉을 받았고 마지막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집까지 빼앗겼지.
그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오직하나, 죽으나 사나 돈을 벌어야하겠다는 생각 뿐 이었어.
그 당시 이미 장가를 간 네 오빠는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정도로 못살았잖아. 그 때 시장에서 주어먹고 매를 맞던 내 손자, 손녀들의 야윈 얼굴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돈을 벌어다 아픈 아버지 약을 사드린다고 먼저 떠난 네 언니를 찾아 엄마가 중국으로 갔지만 네 언니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어.
게다가 엄마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할 데가 없었단다.  매일같이 북한 사람들을 붙잡아 북송을 시키는 중국에서 매일을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았단다.
옥희야, 중국에 있으면서 인편을 통해 네 아버지가 약도 변변히 써 보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서 한평생 당에서 하라는 대로 충실하게 살았고 이제나 저제나 배급을 주는 날이 오겠지 하늘처럼 수령님과 당만 쳐다보고 산 우리 집이 그렇게 몇 년 사이에 쑥대밭이 되었다.
네 아버지는 약 한 첩 제대로 쓰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에게 너희들이라도 앞으로 잘 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돌아가셨지. 게다가 아버지 약값 번다고 중국으로 먼저 들어간 네 언니는 중국에서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나는 식구들 먹고살 돈 번다고 중국으로 들어오고...
사랑하는 내 딸 옥희야, 17살 어린 네 어깨에 집을 맡기고 기약 없는 길을 떠났던 이 엄마를 용서할 수 있겠니?
둘째 딸이라 너는 자라면서 엄마 사랑도 별로 많이 받지 못했었다. 더구나 그 당시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초미의 문제라 부모, 자식, 혈육들이 누가 죽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어.
네가 엄마를 많이 원망하겠지만 엄마는 이제 다시 고향으로 갈 수가 없구나. 
지금은 네 나이도 서른이 넘었을 테고 물론 시집도 갔겠지? 한 없이 그립고 보고 싶어도 엄마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구나.
내 딸 옥희야, 엄마는 세상 누구하나 의지할 곳 없는 몸으로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왔지만 지금 엄마의 삶은 북한에 비하면 천국에서 산단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서는 임대주택을 주고 노년을 편히 살라고 기초생활을 할 수 있는 돈을 준다.
게다가 못 배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하고 싶다면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북한에서 보지도 못한 컴퓨터도 배웠고 재봉기술도 배웠단다.
이제는 내 손으로 어지간한 옷은 만들어 입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어.
사랑하는 내 딸 옥희야, 한국에는 북한에서처럼 굶어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오히려 돈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고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위해 기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돕고 살아간다.
대한민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이런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특이한 것은 교회나 절에 가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언제든 밥을 준다.
더 희환한 것은 군대도 2년이 안 되게 군 복무를 하는데 얼마나 잘 먹고 잘 입히는지 모른다. 오히려 군대가 살이 너무 쪘다고 살빼기 운동을 하고 있어.
북한처럼 목이 손가락 같은 군인들은 볼 수도 없고 나라 전체가 살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엄마도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런데 점차 살면서 보니 고기, 기름, 사탕, 과자를 적게 먹으려고 애쓰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게 되었어.
옥희야, 너도 한국에 태어났다면 대학공부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면서 얼마나 잘 살겠니, 엄마는 길을 가다가 네 나이 또래 아이들을 보면 네가 생각나 한참씩 쳐다보곤 한다.
공부도 직업도, 일도, 행복도, 여행도 자유인 나라, 이런 대한민국에 지금 엄마가 산다.
더군다나 사람이면 누구나 인권은 존중받고 누구나 당당한 권리를 행사한다. 국가가 법으로 보장을 해 주니까.
옥희야, 엄마가 어려서부터 꿈꾸던 천국은 바로 대한민국이야. 여기 사람들은 누구나 백세인생을 바라보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어.
엄마의 실수는 왜 내가 그 때 우리 자식들과 다 함께 떠나지 못했을까, 이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하면 무엇을 하랴만 나는 내 딸 옥희가 굳세게 잘 살아주기만 바란다. 그래야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펜을 놓을게. 옥희야 잘 있어. 엄마가 많이많이 사랑한다.
부디 건강하게 잘 있어라.  사랑하는 엄마가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강성옥씨처럼 참고 견디다 못해 더는 참을 수 없는 막다른 처지에서 탈북을 걸심 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옛날 어르신들이 ‘도둑도 나갈 구멍을 열어놓고 잡아라, 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죠. 쥐도 나갈 구멍을 보면서 잡지 않으면 돌아서서 사람을 문다, 는 말처럼 북한 주민들도 참다, 참다 한계가 오니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앞 뒤 둘러볼 겨를이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더라면, 북한이 저렇게 국민들이 굶어죽는 독재정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누가 북한을 떠났겠습니까, 강성옥씨 같은 분들은 그래서 고향을 떠났고 지금은 두고 온 자식들에게 이렇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고향 떠난 사람들의 마음, 그 누가 다르랴만 강성옥씨 역시 그래서 사랑하는 딸에게 이렇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용서를 빌고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강성옥씨의 사랑하는 둘재 따님께 엄마의 진심어린 마음이 꼭 전해지기를 저도 바라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7-14 (조회 : 225)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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