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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김옥희씨가 사랑하는 딸에게

방송일 : 2017-06-16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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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는 해마다 6월6일이 현충일로 지정되어있고 이 날은 공휴일이라 전 국민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치신 애국선열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살면서 제일 놀랐던 것은 이 날에는 대통령부터 소학교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오전 10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호국영령들에게 1분간 묵례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원래 현충일이란 사전적으로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열사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정한 날, 이라고 되어있거든요.
한국에 온 첫 해에 저는 난생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뭉클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을 한 사람도 잊지 않고 추억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해 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나라를 위해 피 흘리고 오랫동안 군 복무를 하신 전쟁 노병이 예우는 고사하고 속절없이 굶어 죽어가던 북한의 현실이 너무나 대비되어 보였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어떤 이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외면당하다 돌아가신 전쟁 노병 중에는 철갑모가 넘치도록 받은 훈장을 그러안고 굶어서 돌아가신 제 아버지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북전쟁의 아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6월은 그래서 영원히 제 가슴에, 아니 제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6월이기도 합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김옥희씨는 나라 전체가 생지옥이었던 고난의 행군시기 배고픔을 면해보려고 탈북을 하셨고 그 과정에 사랑하는 딸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하신 분입니다. 어떤 사연인지 그럼 김옥희씨의 편지를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충청북도에 살고 있는 김옥희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고 적어도 엄마라면 자식이 잘 되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자기 몸도 바칠 각오로 살거든요.
저 역시 아들 딸 남부럽지 않게 키우며 한 가정의 엄마로 열심히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던 기미년의 흉년 이야기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참혹한 대 기근이 북한에서 계속되자 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딸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만강을 넘던 그 날 밤, 엄마라도 무사히 가라며 경비대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돌리며 깊은 강에 들어섰던 우리 딸과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그 어디에서도 우리 딸을 보았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고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을 했습니다.
혹시 그 날 잘못 되었는지 아니면 북한이나 중국, 그 어디에 살아라도 있을지 소식을 알길 없는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그리는 엄마의  마음이 우리 딸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딸에게
보고 싶고 사랑하는 내 딸 정순아, 그 동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엄마가 우리 딸 이름을 불러본지도 이젠 1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흘렀구나.
그 동안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딸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어디에서도 네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고 기다리다 못해 이렇게 펜을 들었다.
내 딸 정순아, 우리가 두만강을 넘던 때는 먹고살기가 너무 어려웠지.
두부를 만들고 나오는 깡지, 그러니까 비지를 사다가 거기에 풀을 뜯어다 넣고 죽을 쑤어 먹고 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한국에서는 짐승도 그런 걸 먹는 것은 본 적이 없어.
그런 비지풀죽 그릇을 보면 먹지 않고 바짝 여윈 몸에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밖으로 나가던 4 살배기 손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가서는 집에서 얼마 멀지않은 시장에 가 음식장사들이 버리는 것, 남들이 먹다버린 사과 속을 땅에서 주어먹던 내 손녀, 그 모습을 보는 내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짐승보다 못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게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어.
한 생 꾀 한 번 부리지 않고 당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을까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내 몸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곤 했다.
그래서 너와 내가 중국으로 가기로 했고 그렇게 두만강을 넘던 날 밤의 일이 나는 지금도  어제일 같다.
정순아, 네가 지금 살아서 어디에서든 이 방송을 듣는다면 생각이 날거야.
5월이라고는 하지만 그 해에는 유난히도 추웠지? 5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길가의 나무는 앙상한 아지 뿐이었고 오는 봄을 시샘하는지 흐릿한 하늘에서는 싸락눈까지 부슬 부슬 내렸거든.
너와 내가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산 중턱에서 경비대가 교대하기만을 기다리다가 군인이 자리를 뜬 시간을 이용해 밤 12시가 넘어서야 강을 건너려고 산에서 내려왔지. 워낙 흐린 날인데다 경비대가 자리를 뜬 야밤삼경이라 우리는 둘이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너고 있는데 그런데 그 순간, 매복해 있던 경비대군인이 쏜 눈먼 총알이 네 어깨를 관통하는 바람에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어떻게 키운 내 딸인데 총을 맞다니, 그러나 그대로 주저 않으면 다 죽겠다 싶어 그래도 그냥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 엄마의 심정을 정순아, 너는 아마 짐작도 못 할 거야.
설마, 군대가 사람을 쏠 거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는데 그 살인적 현실을 눈  앞에서 본 순간에 나는 온 몸이 굳어지고 가슴만 쥐어뜯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네가 둘이 같이 있다가는 둘 다 죽는다며  “엄마, 경비대를 내가 유인 할 테니 엄마는 꼭 살아서 한 번이라도 사람답게 살아야 해요”이렇게 너무나 침착하고 또렷하고, 힘 있게 말했지.
그러고는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손으로 잡고 허리가 넘는 깊은 강 속으로 경비대를 유인하며 달려갔지. 그 순간에 내가 해야 할 행동을 네가 한 거다.
그 후, 경비대들의 어지러운 고함소리를 들으며 나는 소리쳐 부르지도 못하고 나 역시 강물에 휩쓸려 중국 쪽 기슭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연 이틀 네가 간 하류 쪽을 정처 없이 오르내리며 너를 찾았는데 그러다 나 역시 급류에 휘말려 중국 쪽 강기슭까지 거의 죽은 몸으로 떠내려갔다.
정순아, 그런 나를 발견한 조선족 할아버지 부부가 나를 3일간이나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셨는데 그렇게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었어.
엄마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다시 강변을 몇 백번을 오르락, 내리 락 했는지 몰라. 혹시 너도 나처럼 발견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
끝끝내 너의 흔적도 찾지 못하고 다시 그 집을 떠나 산 설고 물 설은 이국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걷는데 바싹 여윈 손자, 손녀들의 얼굴이 떠올라 또 다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한 번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돈을 벌려고 탈북을 했는데 그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너를 두만강에서 잃어버리고 게다가 내가 무지개꿈을 안고 찾아갔던 중국은 내 생각보다 너무 험악한 곳이었어.
이틀이 멀다하게 중국경찰이 북한 사람들을 잡아 북송시키는 그 살얼음 같은 곳에서 엄마는 만 5년을 혹시 네게서 어떤 소식이 올지 모른다는 조그마한 희망과 그리고 두고 온 자식들이 굶어죽지나 않았는지 하는 뼈를 깎는 것 같은 아픔을 안고 버텨 냈단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네가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서 듣고 나는 한 치도 주저하지 않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단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끝내 너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내 딸 정순아, 네가 목숨을 바쳐 엄마에게 준 그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이 대한민국에서 지금 엄마가 잘 살고 있어.
한 번이라도 잘 먹고 사람답게 살아보려던 너와 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는데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냐?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는 매일 네가 그립고 보고 싶다.
나는 네가 그 어느 하늘 아래에서라도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싶다. 왜냐면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운 엄마 딸이니까.
정순아, 우리 다시 만나는 그 날은 통일 되는 그 날이다. 그 때까지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주길 엄마는 간절하게 바란다.
꼭 살아서 고향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알았지. 잘 있어라.
안녕히~   대한민국에서  너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두만강은 예나 지금이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바다로, 바다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의 눈에는 기쁨을 주는 두만강, 어떤 이의 눈에는 한스러운 두만강, 그 강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목숨과 바꾸면서 넘었는지 세상 사람들은 알 수가 없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한 번만이라도 인간처럼 살고 싶은 간절한 꿈을 안고 두만강을 건너던 김옥희씨의 따님처럼,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사람들의 몫까지 합하여 지금 대한민국에 온 우리 탈북민들이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다른 분들보다 더 행복해야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옥희씨의 따님이 혹시라도 하늘아래 그 어디에 살아계신다면 어머니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사시다가 어머니를 반드시 만나게 되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6-16 (조회 : 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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