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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조경화씨가 사랑하는 두 딸에게

방송일 : 2017-06-30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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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북한과 달리 한국에서는 길가에 떠도는 짐승들을 돌보아주는 시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짐승들을 가리켜 유기 견, 유기 묘, 라고 부르죠.  유기 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이 번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대통령이 이런 유기 견 한 마리를 청와대에 함께 데리고 들어가 돌보아 준다는 이야기가 있어 요즘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죠.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먹을 것이 없어 온 나라 여기저기로 심지어 낯선 이국으로까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북한주민들이 생각납니다.
제 식구도 먹여 살릴 수 없어 나라 전체가 유기 견보다 못 한 처참한 처지에 내 몰렸던 북한 생각을 하면 한없이 슬프고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그 속에 떠밀려 저 자신도 탈북을 했고 오늘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그 과정에 부모, 형제, 가족 친척이 영원히 헤어져 억울한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 핏줄을 나눈 부모형제가 서로 생사조차 알길 없어 안타까이 찾고 부르는 피타는 웨침 소리가 비정한 북한 지도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봅니다.
떠돌이 유기 견을 가족처럼 돌보는 남한의 지도자와 독재자들 때문에 이산가족이 되어 오늘도 울고 있는 자기백성들조차 나 몰라라 하는 북한의 지도자, 너무나 극과 극 같은 모습 아니나요?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조경화씨도 그렇게 헤어진 자식들 때문에 14년간을 피눈물 속에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럼 조경화씨의 안타까운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조경화입니다.
아마 기막힌 사연이 없었다면 제 자식들이 부모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꼭 잡으면 부서질세라 놓치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운 제 딸들이 배가 고파 중국으로 살길을 찾아 간 후 저는 매일 어떻게 해가 뜨고 어떻게 해가 지는지도 알 수 없이 제 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아이들을 찾아 저 역시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그 넓은 중국 땅에서 애들이 간 곳을 더군다나 알 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는 조그마한 희망을 안고 한국으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4년이라는 긴 세월 어디에서도 우리 딸들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딸들을 만나고 싶은 이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편지를 씁니다.

사랑하는 내 딸들에게

보고 싶은 내 딸 경희, 경란아, 그 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가 너희들과 헤어진지도 어언 1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구나.
경희야, 경란아, 엄마가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엄마는 밤마다 너희들 생각에 잠도 못자고 혼자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울며 산 세월이 자그마치 14년이나 흘렀다.
이제는 눈물도 말랐을 법 한데도 너희들 이름을 부르니 또 눈물이 나온다.
사랑하는 딸들아, 우리가 살던 고향이 생각나니?
우리는 함경북도 은덕군에서 살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매일같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던 그 끔찍한 세월 너희들이 너무나 배가고파 중국으로 탈북을 하게 되었지.
그 당시에는 옆집에서 누가 죽었는지, 심지어 한 가정에서도 서로 먹고 살기가 어려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어.
그래서 동네에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았고 나중에는 집 한 채가 빵 몇 개, 강냉이 몇 킬로와 바꾸어먹었지.
산 사람이 굶어죽는 모습을 본 사람들만이 그 비참함을 알 수 있을거야.
사랑하는 내 딸 경희야, 경란아, 참으로 1998년 말에는 나라는 있어도 지도자가 없는 나라였고 백성은 있어도 하소연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거지 백성들만 있었어.
그 거지같은 사람들이 먹고 살아 남겠다고 떼를 지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널 때 그 누구도 우리들에게 관심조차 하지 않았지. 앉아서 굶어죽기보다 차라리 두만강 건너 중국에서 거지로 살지라도 그  때에는 배만 불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마음이었어.
너희들이 엄마에게 알리지도 않고 먼저 탈북을 하는 바람에 엄마는 그 날부터 혹시 너희들 소식이 올까, 하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내 딸들아, 첫째 황경희, 너는 1984년 3월8일에 태어났고 둘째 황경란, 너는 1987년 5월7일에 태어났어.
혹시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두만강을 건넌 때는 2003년 5월 말 이었고 그 때 큰 애는 19살, 둘째는 17살이었단다. 
그렇게 간다는 말도 없이 너희 둘이 한날에 사라져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엄마는 그 때부터 너희들을 찾노라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애타게 너희들을 찾아다니며 씩을 기다리다가 끝내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이 엄마도 중국으로 넘어갔단다.
너희들에게서 소식이 행여 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7년을 기다리며 엄마는 죽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너희들을 찾아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그 대가 2010년 1월 초였어.
엄마는 희망과 기대를 안고 너희들을 찾을 용기 하나로 중국으로 갔지만 중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는 더 이상 중국에도 있을 수 없었다.
매일같이 공안경찰들이 북한사람들을 찾아 잡아가고 계속해서 북송을 시키는 살벌한 중국에서 엄마는 한 시도 살 수가 없었다. 차라리 굶어죽을지라도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브로커를 통해 다시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
물론 중국공안의 감시와 북송이 두려워서도 그랬지만 많은 탈북 민들이 그 길을 거쳐 한국으로 갔다니 행여 너희들도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내 마음을 그 길로 인도했단다.
사랑하는 내 달들아, 엄마는 한국으로 와서도 너희들부터 찾기 시작했어.
그런데 어디에서도 내 딸들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7년이 흘렀다.
사랑하는 내 딸 경희, 경란아, 지금 어디에 있니?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희들은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니? 난 너희들 이름만 불러도 미칠 것 같고 한 밤중에 자다가도 너희들 생각만 하면 벌떡 깨어나곤 한다.
그리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 중에 혹시라도 이런 사람을 보신 적이 있거나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북한개혁방송국으로 연락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애들이 살던 곳은 함경북도 은덕군이고 은덕군에 있는 은정고등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 살아 있다면 큰 애 경희는 34살이고 작은 딸 경란이는 32살입니다. 이런 애들을 보셨다면 엄마가 눈을 감기 전까지 딸들을 계속 찾고 있다고 꼭 알려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내 딸들아, 엄마는 너희들을 찾기 전에는, 아니 너희들을 만나보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나는 내 생이 다 할 때까지 너희들을 찾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려 글줄이 잘 보이지 않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글을 쓰고 있단다.
나는 너희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라도 최소한 알았으면 원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어디에 살아있던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주길 간절하게 바란다.
오늘도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우리 딸들 이 땅 어디에 살아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그리고 소중한 엄마의 품으로 꼭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잘 보호하시고 돌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딸들아 우리는 반드시 만날 수 있어. 그 날까지 부디 안녕하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하련다.
~안녕히~   서울에서 엄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이 아프게 가슴을 허비는 편지였습니다. 세상 그 누가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만 14년간이나 딸들의 소식을 기다려 온 조경화씨의 마음은 타다 못해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렸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밤, 가난해도 어려워도 가족이 함께 할 수만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던 엄마의 간절한 바램,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조경화씨의 따님들에게 그대로 전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이런 안타까운 편지를 전 할 때마다 늘 그랬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의 만남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저도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랍니다.
또, 이 편지를 들으시는 청취자 여러분들도 혹시 주변에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함께 귀 기울여주시고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가져주시길 바라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6-30 (조회 : 25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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