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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6회 - 전장의 포화를 이겨낸 합스부르크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방송일 : 2017-06-30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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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이끌고 발전시켜온 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성 인물을 떠올린 분은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존여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정말 열등하고,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래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평등을 운명으로, 또한 무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북조선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이들이 북조선 사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여러 여성 인물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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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볼 여성은 유럽 동쪽에 위치한 나라, 오스트리아의 황후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살아갔던 1700년대의 유럽은 그야말로 전쟁의 소용돌이였습니다. 그녀는 비록 황제가 아닌 황후였지만, 황제였던 남편 프란츠 1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용기와 지혜로 실질적인 군주의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1717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태어나자 아버지 카를 6세는 딸에게 왕위를 순조롭게 물려주기 위해 주변 국가의 동의를 얻고자 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이름은 합스부르크였는데, 기존 합스부르크의 왕위 계승권은 반드시 아들에게만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를 6세는 유럽 강대국들의 승인을 받아 자신의 왕위를 딸에게 물려주고자 애썼습니다. 이른바 <국사 조서>라고 하는 문서를 만들어, 여성도 왕위 계승자가 될 수 있음을 여러 국가들로부터 허가를 받았는데요. 당시 유럽 사회는 각각 개별 국가이자 일종의 연합과도 같았기 때문에, 상호간 화합과 동맹이 무척 중요했습니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여러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카를 6세가 사망하자, 그녀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였던 여러 나라들이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이라는 나라는 마리아를 평생 동안 괴롭힌 나라였는데요. 왕위 계승권을 두고 합스부르크 대국은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때마침 국내 귀족들도 그녀에게 반역을 일으키면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카를 7세에게 왕위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차례에 걸친 전쟁을 거듭하게 됩니다. 프랑스, 바이에른, 보헤미안 등 여러 유럽 국가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던 도중, 그녀에게 다시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카를 7세가 황제로 즉위한 지 4년도 채 되지 않아 돌연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당시 왕위 계승자였던 막시밀리안 3세와 담판을 벌여, 황위를 포기하겠다는 담판을 얻어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 순위 계승자였던 그녀의 남편, 프란츠가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데, 프란츠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반면 테레지아는 권력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때문에 남편은 그저 이름뿐인 황제였고, 테레지아가 제국의 군주 역할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테레지아는 개혁을 시작해 나갑니다. 무엇보다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여 사회 전체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그녀는 농노제- 즉 농사를 짓는 노비를 해방해 주었습니다. 이 조치는 수많은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국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켜 국민 생활을 번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두 번째로, 그녀는 관료 선발제도를 개선하여 신분이 아닌 실력에 의해 인재를 등용합니다. 그리고 관료들과의 열린 토론 및 협의를 통해 제국을 보다 나은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셋째, 의무교육 제도를 설립하여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였습니다.

넷째, 민법-즉,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생활 관련 법을 널리 시행하고, 기존 법률에서의 부당한 조항 및 잔혹한 형벌을 폐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사회 내 범죄율이 확연히 줄어드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다섯째, 공무원 제도를 개혁하여 불필요한 직무를 폐지하고 새로운 직무를 신설하였습니다. 또한 공무원에 대한 엄격한 노동 심사제도를 두어,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 국가를 위해 성실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여섯째, 납세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상세하고 명확한 규정을 매우 공정하게 적용했고, 이로써 충분한 국가 재산을 확보하게 된 정부는 공공설비와 사회복지를 대폭 개선합니다. 또 각종 학교를 신설하고 가치 있는 역사적 건축물을 중건했으며, 정부 조직을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혁신은 오스트리아가 현대국가로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갈수록 부강해졌고, 수도 비엔나는 유럽의 문화중심지로 부상하였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귀족과 우수한 음악가, 건축가, 화가 등이 앞 다투어 비엔나로 몰려왔고, 이 도시는 유럽 최고의 도시로 발돋움합니다.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들도 어쩌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이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요한 스트라우스 등이 비엔나에서 활동하면서 이 도시는 유럽 고전음악의 탄생지로 자리잡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노년은 평화로웠습니다. 남편 프란츠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 요제프 2세가 황위에 오르게 되었는데요. 그는 어머니를 닮아 국민을 위한 정치와 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젊은 시절, 수차례 겪은 전쟁이 국민들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와 같은 경험은 황제로 하여금 병사를 자녀처럼 아끼는 정책, 그리고 가급적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평화주의적 외교정책을 실시하게끔 만들었습니다.

1780년, 합스부르크 왕가 최초이자 최후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역사 속 여러 여황제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개혁 군주였습니다. 지나치게 권력에 탐닉하지도 않았고, 날카롭거나 괴팍하지도 않았습니다. 균형 잡힌 성품과 가치관으로 국민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았고, 지혜로운 통찰력으로 국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마리아 테레지아의 삶을 보며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그녀는 황제였을 때보다, 도리어 황제의 아내였을 때 국가를 위해 더욱 큰일을 해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변국의 허락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 없었지만, 테레지아는 나라를 통치하는 실력을 발휘함으로써 황제라는 직위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능력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성분 때문에, 형편 때문에, 제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오늘 만나본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실력이 곧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생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그 기회를 붙잡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입력 : 2017-06-30 (조회 : 17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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