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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메아리

《인정받지 못한 최고존엄》 11회 김정은이 맞형 김정남을 암살하려고 한 리유는 무엇인가(2)

《인정받지 못한 최고존엄》 11회 김정은이 맞형 김정남을 암살하려고 한 리유는 무엇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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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김정남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평양에서는 김정일의 건강이 나빠져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2007년 2월 베이징의 국제비행장에는 뚱뚱한 몸집의 남자 한명이 진한 색안경을 끼고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바로 김정남이였다. 북조선 문제라면 사족을 못쓰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일본 기자들이 김정남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정남씨인가요?”


다른 때 같으면 숨어다니며 언론에 로출을 피했던 김정남은 이때부터는 일부러 기자들의 눈에 뜨이게 활동했다. 2007년 한해동안 김정남은 베이징과 유럽 등지에서 일본기자들에게 자신을 공개하면서 평양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가끔 아버지를 만난다고 말했다.


2007년 5월에 김정일은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독일의 심장수술 전문의사들을 불러들여 가슴 부위의 막힌 혈관을 통하게 하는 특수한 수술을 했다. 이때 김정일의 병치료를 위해 해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다름아닌 김정남이였다. 아버지 김정일의 병치료에서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후계자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2008년 9월 10일, 남조선의 국영 텔레비죤인 KBS는 김정일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보도했다. 세계 언론들은 김정일이 죽으면 누가 뒤를 이을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했다. 당시 최첨단 기술로 평양의 전화를 도청한 남조선과 미국의 정보망은 “(김정일이) 아주 잠들었나”라고 묻는 최고위급 간부의 전화를 도청했다. 중풍 초기에 김정일은 무의식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2008년 8월 하순 남조선 국가정보원(옛 안전기획부)는 평양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병원으로 보내는 김정일의 뇌를 찍은 렌트겐 사진이 담긴 전자우편을 도중에서 가로챘다. 분석 결과 김정일의 남은 수명은 5년으로 판단됐다.


2008년 8월 장성택은 김정일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김정남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지만 의식을 차린 김정일에게 크게 욕을 먹었다고 한다. 이후 장성택은 공식적으로 김정남이 아닌 김정은을 선택해서 후원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김정은의 생일날 2009년 1월 8일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때 정치적으로 어린이나 다름없는 철부지인 25살의 어린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자 모든 사람들은 의아해했고 믿지 않는 전문가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1987년부터 김정일의 직속 료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도 겐지는 평소에 김정일이 “김정은은 성격이나 행동에서 나를 가장 닮았다”며 앞으로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확인을 해주었다.


전문가들이 김정남을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본 리유는 중국 지도부의 내부 자료에 근거하고 있었다. 2009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내의 《조선연구소조》에서는 중풍에 걸린 김정은 이후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비밀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비밀보고서에는 “김정은보다는 김일성 주석이 인정한 김정남이 조선의 지도자로서 정통성과 능력이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남조선의 연합뉴스는 2009년 1월 15일 “북한 김정일, 3남 김정은 후계자 지명”이라는 제목으로 김정은 후계자 지명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하지만 특종 보도가 있은지 불과 열흘만인 1월 24일 김정남은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일부러 일본기자들 앞에 나타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그것을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만이 결정하실 것이다. 결정되기 전에 가정하고 상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어 일본 기자들이 동생인 김정운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알고 있는가고 묻자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동생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했다. 김정남의 이런 말들은 아직은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자 결정이 완전한 것이 아니며 바뀔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므로 대응을 하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실제로 김정남은 2009년 3월 30일에는 일본 후지텔레비죤, 6월 6일에는 일본 니혼텔레비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 두 인터뷰에서도 김정남은 1월 24일의 ‘애매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렇게 김정남이 해외에서 자신을 알리며 후계자 경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한창 알리고 있던 2009년 4월 3일,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우암각에 국가안전보위부 부원들이 들이닥쳤다.


우암각에 모였던 김정남의 측근들이 총격전 끝에 모두 체포됐다. 당과 군대, 보위부 등에 있던 김정남의 측근들도 줄줄이 체포됐고 이 소식은 곧 김정남에게 알려졌다. 다음날인 4월 4일, 김정남은 베이징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은이 내 동창들을 잡아갔어. 조심해야 하겠어”라고 말했다.


다시 3일이 지난 7일에는 제3국에 있는 친구에게 “당분간은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전했다. 4월 말 김정남이 제3국에 있는 친구에게 하는 전화통화가 도청됐는데 이때 김정남은 이렇게 내뱉었다.


“개새끼! … 쪼꼬만 새끼가 나를 죽이려고 해”


하지만 김정남과 김정은의 피의 혈투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입력 :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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