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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1년 김정은 우상화 인식과 이미지 변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3-27 (조회 : 895)
첨부파일 첨부파일 있음 2011 김정은 이미지 변화 분석.hwp   

 

 

 

 

2011년 김정은 우상화 인식과 이미지 변화

북한주민 입장에서 본 우상화와 이미지 변화

 

20111213

 

 

핵 심 요 약

-

- 김적

- 중능

- 북한

 

 

 

 

 

 

 

 

 

 

 

 

북한개혁방송

대표 김승철

 

2011년 김정은 우상화 인식과 이미지 변화

 

1. 2011년 김정은이 보여지는, 보여주는 특징

 

2011년 김정은 후계자의 우상화 특징은 형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0년대 초에 우상화를 시작하던 방식으로 하고 있으나 그 절차와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은 이념과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적을 토대로 우상화의 기초와 구조와 내용을 완성했다면 김정은은 권력을 우선하고 간접적인 선전선동과 시각적 효과를 통해 후계자의 우상화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후계자가 본인의 생체적 특징과 북한 내부 환경과 시간적 촉박함, 대내외 조건 등으로 후계자의 3대요소인 위대성과 정당성, 업적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1년 김정은이 보여지는, 보여주는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상화

김정은 우상화, 후계자의 권력과 권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후계자로서 갖추어야 할 3대요소인 위대성과 정당성, 업적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3대요소를 어떻게 만들고 공고화 하며 북한주민에게 내면화 시키는가 하는 것은 향후 김정은 후계자 권력의 절대성과 공고함, 강력함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위대성

- 김정은 후계자의 위대성을 보장하는 것은 북한 지도자로서의 첫 번째 조건의 충족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이념에 의한 수령론으로부터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위대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북한당국이 선전한 것은 3살부터 20대 후반까지 과정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탁월한 능력, 리더십 등이다.

- 천재성 : 현 북한주민 인지 및 정보 능력 고려하지 않은 유치한 간접인식

김정은의 위대성을 위해 북한당국이 선전한 것은 3살 때 한자를 쓰고, 9세에 명사수였으며, 8세에 승용차 고속운전, 2년간 외국유학 과정에서 4개 외국어 숙달, 16세에 논문 완성, 포술에 능한 것, CNC GPS 등 첨단기술의 활용 등이다. 이 같은 김정은의 천재성은 모두 북한주민들이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닌 선전선동 자료에 의한 간접 인식이다.

 

- 결단성과 과감함 : 군사분야에서만 특정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조작과 왜곡

김정은의 군사적 리더십으로서 결단성과 과감함, 첨단 군사력의 이해와 활용 및 사용이 군 및 주민 강연제강들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을 강하게 요구해 선군의 기치를 고수하고, 강성대국은 통일로 연다. 연평포사격시 70명 미군사전문가 이겼다, 탱크를 몰고 서울에 진격하겠다, “장군님(김정일) 배짱을 그대로 닮으셨다”, “전국에 총소리를 울려라”, “김정은이 수백배로 갚아줄 것”, “자나깨나 전쟁을 생각하라”, 류경 및 주상성과 같은 김정일 최측근 과감한 숙청 등이다.

이러한 김정은의 결단성과 과감함은 군부의 장악과 공포와 권위의 조성, 주민단속과 처벌, 국경통제의 강력함 등으로 김정은 카리스마를 만들어 위대성의 한 요소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시각적 위대성 : 시각적으로는 김일성, 능력과 기질은 김정일 닮음.

북한 언론은 김정은의 위대성에 대해 김정일을 그대로 빼닮았다고 하지만 시각적으로 볼 때 김정은의 얼굴은 김정일을 닮지 않고 김일성을 닮았다. 김정은의 머리스타일, 행동과 손짓, 옷차림 등은 모두 김일성을 닮았지만 선전에서는 김정일을 닮았다고 한다.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 두 지도자를 모두 닮았음을 동시에 확인시켜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대성을 자연스럽게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시각적 위대성을 완성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보여주는 우상화에 속한다면 보는, 보여지는 특성은

그러나 이와 관련해 북한주민들은 김일성과 닮은 것은 인정하지만 김정은이 어리고 경험이 없는 부분을 인지하고 있어 김일성의 리더십과 카리스마, 호감 등과는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특히 화폐교환으로 김정은의 시각적 위대성은 거의나 소멸한 상태이며 이로인해 반발적 역효과도 있다.

하지만 장사 등으로 정보와 인식 능력이 약한 많은 주민들은 김정은의 시각적 위대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보여진다.

- 성과의 위대성 : 축포야회, 무력도발 외의 분야에서 위대성 달성은 실패

김정은이 위대성을 북한주민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그는 실천과 그 결과로서 자신의 위대성을 인정받아야 우상화가 내면화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091월 후계자가 된 이후로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지는 않아도 보여주기에 성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축포야회라는 이벤트와 연평도 공격과 같은 무력도발뿐이다. 경제 분야에서 김정은은 실적이 없다.

 

정당성

- 김일성을 닮았다 : 김정은의 가장 큰 정당성은 북한주민들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는 김일성을 닮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6차례에 걸친 성형수술로 얻어진 것이라는 뉴스를 전제로 하더라도 그는 시각적으로는 김일성을 닮아 김일성 시대의 향수와 겹치면서 혈연의 정당성을 보장 받아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 김정일의 아들 : 현존 지도자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것은 김정은이 후계자 권력을 얻기 위한 중대한 정당성이다. 이는 김일성 시대에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만들어 놓은 이념적, 사상적, 구조적, 조직적 틀이 있어 김정일 아들이라는 것은 후계자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준다.

- 우상화 : 김정은 우상화의 내용들이 북한주민들의 공감과 내면화가 되면 그것은 정당성을 확인, 보강해주지만 현재로서는 이 부분이 크게 약하다.

업적

- 김정은의 업적은 현재로서는 현실에서 실천으로 나타난 것은 거의 없고 선전, 선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뿐이다. 작은 업적으로는 축포야회, 무력도발, 평양시 배급이나 건설, 놀이시설 등으로 미미한 것들이다.

- 특히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화 된 이후에 업적은 북한주민들이 느끼기에 충분한 업적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이다. 이는 김정은 우상화에 큰 타격이 되고 있다.

2) 현지지도와 TV 뉴스

- 김정일과의 동급(同級) : 올해 김정은의 공개활동을 통해 보여준 후계자로서의 이미지는 김정일과의 현지지도를 항상 함께 다녔다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 시대부터 현지지도로 우상화와 권위를 형성해온 북한체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인바 김정은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서 시각적, 행동적, 관계적 측면에서 김정일과의 동급화를 시도했다.

김정은은 국가안전보위부장,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대장, 당 조직지도부 부장(?)의 모든 권력을 가졌지만 이 권력의 사용에 대한 당위성을 주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김정은이 김정일과의 현지지도를 함께 하면서 TV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당, 행정에서 그의 명령과 지시로 집행되는 일들이 김정은이 절대적 2인자 또는 상대적 1인자로서의 지위를 차지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김정일과 김정은이 현지시찰한 건물에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께서 현지지도 하신 건물이라고 써붙이는 것이나 또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이름이 나란히 걸리는 것이다.

- 상대적 1인자 : 김정은을 상대적 1인자로 보여주는 것는 후계자로서 권력이 김정일의 하위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제는 김정은 시대가 왔고 그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김정일과 한손으로 악수하는 김정은(2011.11.2, 연합뉴스)의 사진이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절대적이고 신의 권력과 같게 여겼던 김정일과 동급이며 이는 이미 상대적으로 1인자의 지위에 올라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와 동시에 올해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강화된 김정은의 치안관련, 행정, 경제 관련 지시들은 그가 절대자의 지위를 가졌으며 절대적 1인자인 김정일이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1인자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3) 김정은 호칭과 주민과의 관계

- 김정은 대장동지 : 김정은의 호칭은 그의 권위를 확인, 고착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일성은 수령, 김정일은 장군님으로 고착되어 있으며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령도자, 위대한 등의 최고의 칭호를 갖고 있어 절대권력 세습의 당위성고 고착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급조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후계권력 구축의 핵심 기관의 고착되는 과정에서 호칭이 변화를 겪었다. 호칭의 다양성과 변화는 절대자의 권위를 보장하는데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될 수 있다. 다시말해 김정은 우상화의 신뢰성과 충실성, 절대성과 유일성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된 뉴스가 RFA20101229일 뉴스에서 언급된 김정은 우상화 선전선동 주체기관의 변화 관련 뉴스이다. 그 내용의 핵심은 김정은 초기 우상화에서는 군과 국가안전보위부가 담당하면서 아마추어성을 보여 노동당과의 갈등을 빚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노동당이 김정일에게 군과 국가안전보위부의 김정은 위대성 선전 사업의 문제점을 보고하여 김정일을 격노케하고 청년대장’, ‘샛별장군등의 용어를 대장으로 통일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일체화와 절대화, 유일화라는 우상화의 중요원칙을 훼손한 것으로 올해에 들어와 김정은은 청년대장, 샛별장군이라는 용어는 거의나 쓰지 않고 김정은 대장동지로 통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극적 소통이 아닌 참가자 : 김정은은 김정일과의 현지지도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집적적인 접촉은 아주 적은 대신 군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일부 접촉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김정은은 김정일의 옆에서, 뒤에서 자유롭게 또는 손을 모은채로 참가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서도 악수를 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단계로 중앙에 김정은이 있고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의 사진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아직까지 김정일의 권위와 역할을 점령할 단계는 아니며 김정은이 직접 주민과 접촉하였을 경우 얻게 될 신격화, 절대화, 충성화의 효과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숭배(崇拜) 아닌 두려움 : 2011년에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에 대한 소식들은 현실은 인정하나 김정은의 우상화(절대화, 신격화)는 찬성하지 못하고, 강력한 통제에 두려움을 갖게 된것으로 보인다. 군부의 사단, 여단, 군단급 간부들이나 행정, 당기관의 간부들은 김정은의 지시를 집행하지 못했을 경우, 단속과 검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는 현상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정일 지시는 만만하게 대해도 김정은 지시는 집행하느라 야단법석을 떤다는 현상으로 요약되어 나타났다.

특히 국경지역에서 진행되었던 특별 검열에 동원된 폭풍군단이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의주의 도당의 최고위급 간부들을 숙청하고, 류경 국가보위부 부부장과 주상성을 숙청한데서 볼 수 있듯이 2011년에 김정은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북한주민과의 관계를 특징 지었다. 이는 김정은이 현실의 악화로 인해 자발적인 숭배와 충성심을 얻어내기 어렵게되자 공포와 두려움으로 복종의 권위를 만들어내려고 한 것으로 인다.

- 비아냥과 무시, 불만 : 2011년에 김정은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반응은 두려움과 공포와 함께 현실문제에서 은근한 비아냥과 무시, 불만으로 나타났다. 이는 김정은이 선전선동과 학습에서는 위대성과 권위를 고착시키는 효과를 얻었지만 이것이 내면화되거나 습관화, 고착화의 단계로 심화되기보다 어쩔 수 없는 순응과 복종으로 되면서 가능한 경우에 비아냥과 무시, 불만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업적이 없다. 아버지 업적으로 올랐다. 국방에 신경쓴다”(2011.11.15, 연합뉴스), “아직 어려 철이 없다”(2010. 10. 10, 조선닷컴)

심지어 김정은의 1년 군복무 선전에 관해 전연부대에 갔던 몸이 아니다라는 반응은 김정은의 보여지는 이미지가 의도자의 목적과 상반되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4) 권력장악과 리더십

선 권력, 후 보완,

- 김정은의 권력장악은 표면적으로, 체계적으로는 완벽하다. , , 국가안전보위부, 내각, 청년동맹 등 모든 중요 권력기관들이 김정은의 지시를 받고 그것을 집행하려 하고 있다. 이는 2011년 하반년에 들어오면서 더욱 뚜렸해졌다. 특히 각종 건설, 행정, 치안 등과 관련한 명령 지시는 김정은의 이름으로 내려오고 단속과 검열 그리고 총화와 처벌 등도 김정은의 지시와 승인과 허가로 진행된다는 뉴스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폭풍군단 검열과 처벌, 1118상무의 조직과 강화, 도별 상호 검열과 신의주와 평북도의 고위층 간부에 대한 숙청 등이다. 군부가 주도하던 무역기관와 대외무역의 권한 회수 등도 김정은 권력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력의 외면과 내면의 차이 : 2011년에 김정은으로 이전된 권력이 김정은의 실질적인 권력인지 아니면 김정일에 의해 보호받거나 대리(代理)되는 권력인지는 분명치 않다.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과 20109월의 공식등장, 북한권력의 특징, 김정은의 행보 등을 보면 그의 권력은 외면적으로는 완벽해보이나 내면적으로는 김정일이 일시적으로 임대(賃貸)해준 대리권력 비슷한 느낌을 준다. 김정은 권력의 외면은 실질권력 같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바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김정일의 권력 스타일과 다른 측면, 즉 젊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권력에 관한 뉴스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김정일 동지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대장 동지는는 군 령도권자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뉴스이다. 이는 절대권력은 김정일이 갖고 있으되 그 권력의 행사(行事)하는 자는 김정일이라는 뜻으로 이는 김정은의 권력이 아직까지는 대리권력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형성되지 않은 리더십 : 2011년에 김정은이 보여준 특징 중에서 한가지 불확실한 것은 김정은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서해교전과 연평포격 등에서 그의 리더십을 선전해왔지만 미확인이다. 또한 김정은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들에서 김정은은 정적(靜的)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상화 교양자료들에서는 김정은의 리더십을 강조하지만 명령과 지시 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김정은의 리더십을 평가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의 리더십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유이다.

5) 이미지 교정

- 올해에 김정은의 공개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미지 교정이다. 불의에 나타난 신비의 후계자, 너무 젊은 후계자, 경력과 능력, 재능이 확인되지 않은 후계자, 선전선동으로만 접할 수 있는 후계자, 사진으로만 확인되는 후계자, 지시와 명령으로 느낄 수 있는 권력 등이 김정은의 이미지였다. 이는 급조된 후계자의 이미지를 완성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측면이다.

왜곡한 이미지 교정 : 올해에 김정은 이미지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위대성과 능력을 선전함에 있어 지나치게 어린 나이, 3살부터 이미지 구축의 시기를 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군부와 국가안전보위부의 아마추어들이 만들어낸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김정은 후계자의 이미지 형성의 어려움과 시간적 촉박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북한당국은 김정은의 신상을 왜곡한 사실이 그의 이미지에 줄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했다. 가장 극적인 것은 김정은 결혼설을 통해 김정은의 나이 변경을 사실화 시키려 한 것을 들수 있다. 김정은의 결혼설(2011.10.28, 데일리엔케이)로 김정은의 나이를 고착시키려는 전술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당과 군 간부들 사이에서 김대장 동지의 나이가 올해 우리 나이 서른살로 지난해 청진 여성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그 근거이다. 이는 김정은의 나이를 자연스럽게 고착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이는 북한에서 신뢰도가 높은 소문의 형식을 이용해 김정은 우상화의 수단으로 활용한 정교한 우상화 선전에 속한다.

 

2. 김정일의 후계자 권력과 김정은 후계자 권력의 비교

 

김정일은 본인이 주도적으로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면 김정은은 부하와 김정일, 측근, 기관에 의해 구축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1) 후계자 권력의 형성

- 김정일은 자신의 우상화를 이념과 사상이라는 이론적 토대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확정되기 이전에 이미 김일성의 유일 아들로 김일성과 함께 다니며 권력을 체험하고 권력을 연습했고, 자신의 경쟁 상대와 목표, 수단과 환경 등을 충분히 인지했다. 이런 사전 준비를 토대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리했으며, 70일전투 등으로 경제분야의 업적을 만들고, 김일성 선물제도를 만들어 북한주민의 환영과 신뢰를 얻었고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도체제로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을 만들었다. 또한 3대혁명소조라는 당내의 별동대와 같은 조직을 통해 아버지의 권력 안에 김정일만의 독자적 권력을 스스로 형성했다. 동시에 정치적 능력을 발휘해 계모인 김성애와 삼촌 김영주를 물리쳤다. 이 모든 것은 김정일의 20대 초반부터 준비되고 구축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 김정일은 자신이 만든 권력으로 김일성의 권력을 무력화시키고 그 속에 자신의 절대권력을 고착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을 조건부로 김일성 권력의 핵심 요인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겉으로는 김일성 권력이었으나 내면에는 김정일 권력이 절대적이도록 만들었다. 이는 김정일의 탁월한 권력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 그러나 김정은은 아버지에 의한, 아버지가 보장하는, 아버지의 권력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2011년 년말에 보여지는 김정은의 권력이 겉으로는 김정은의 권력처럼 보이나 속으로는 김정일의 권력이므로 대리권력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주민들도 아버지 업적으로 올랐다는 표현에서 가장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후계자의 권력에서 볼 때 김정일의 후계자 권력은 실체였다면 김정은의 후계자 권력은 형상(形狀)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주민들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지된 형상 권력이 실체가 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2) 현지지도

- 김정일은 후계자가 되기 전에는 권력 중심, 당 조직과 보위부 등 권력기관 내에서 현지지도를 했지만 후계자 지명 이후에는 전국과 주민을 상대로 현지지도를 했다. 특히 김정일의 현지지도는 김일성과 함께가 아닌 독자적 현지지도였다는 특징이 있다.

- 반면에 김정은은 후계자로 지명된 직후에도 평양에 머물렀고 지방을 독자적으로 현지지도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있다고 해도 아직은 보도하지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왜냐하면 후계자의 이념적, 이론적, 권력의 지위에서 김정은은 당위성과 실체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김정은은 후계자로서 독자적으로 현지지도를 다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김정일과 동행의 형식으로 현지지도를 다니고 또 그런 모습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 이는 김정은의 권력이 독자적 현지지도를 통해서는 인정과 권위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현실적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은의 현지지도는 그의 권력을 보장하고 확고하게 해주기보다는 인식시키고, 일상화 시킨다는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권력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결정적 측면이다.

 

3) 업적과 주민과의 관계

- 김정일은 사상과 리념, 체제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인정받는 업적을 쌓았다. 물론 김정일의 업적은 국가체제의 내구성과 잠재력의 소모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김정일의 업적은 북한주민들을 현실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감동시켰고 실체로 확인받았다. 이로 인해 김정일의 권위와 그에 대한 충성심은 김일성에 맞먹는 것으로 고착되면서 그때 형성한 절대권력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고 체제유지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 반면에 김정은은 이념과 체제, 경제와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인정받는 업적이 없고 가공된 업적의 주입과 강요를 하는 상황이다. 김정일의 업적이 과거의 것으로 식량난을 비롯한 장기간의 문제와 시간으로 엄청나게 희석되었지만 아직까지 유효하다면 김정은의 업적은 자그마한 업적마저 화폐교환과 같은 초기의 실수로 회복되지 않고 현상유지 또는 퇴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일은 아직까지 주민들이 충성하고 숭배하는 대상이여서 상당히 친근감과 접근성, 근접성이 좋은 반면에 김정은은 거리의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관계형성이 안되있는 상태이다.

4) 권력장악과 리더십

- 김정일은 처음부터 권력을 확실하게 장악했다면 김정은은 권력은 장악했으나 장악한 실체는 확인되지 않는 상태이다. 이는 김정일 권력을대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나이와 우상화, 업적, 경험 등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 리더십에서도 김정일은 실체가 확실했다면 김정은은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나 김정은의 권력장악은 1970, 80년대처럼 상대적으로 월등히 좋은 경제, 사회, 문화환경과 철저한 폐쇄와 완벽한 우상화 교육 등의 환경이 아닌 외부로의 다양한 정보유입이 되고 주민들의 의심과 반발, 냉소 등이 공존하는 시점에 형성되었다는 측면에서 권력장악과 리더십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3. 북한주민의 김정은 인식

 

1) 후계자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

후계자는 인정하나 당위성은 불신 :

- 북한주민들은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은의 직계혈통으로 후계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인식을 하지만 그 정당성에 대해서는 미확신 상태이다. 김정일 아들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됐다는 인식은 것은 1970년대 김정일과 2010년대 김정은의 가장 큰 차이이다. 1970년대 김정일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것보다는 능력으로 후계자가 된 것처럼 선전했었다. 이런 차이는 김정은 후계자는 인정하지만 당위성에 불신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 김정은은 올해 년중으로 김정일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장성택과 김경희 등 가족이 모두 TV에 노출하는 모습에서 김정은은 능력과 자질보다는 혈통의 당위성이 더 강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김정일 생존에는 당위성이 인정되겠으나 김정일 사후에는 김정은 후계자의 당위성이 급속 추락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고 이러한 인식은 북한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 2011년 김정은은 선전선동과 시각적 효과로 후계자의 당위성은 인정을 받았지만 그 신뢰도는 약하다.

 

2) 김정은 우상화의 내면화

우상화는 표면적으로만 유지될뿐 내면화는 실패

위대성 : 강요된 위대성, 주민들은 감동하지 못하고 인식만 할뿐

- 김정은의 위대성은 선전선동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할 수 없는 상황이 2011년 전반에 관통됐다. 이는 북한에 외부정보가 급속히 유입되고 주민생활이 어려웠으며 강성대국 완성 전의 해라는 측면, 김정은이 주민들의 감동을 불러내지 못한 측면 등이 원인이 됐다.

- 시각적으로도 김정은은 김정일의 옆을 따라다니며 조용히 서있거나 악수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과거 김정일의 동적인 사진과 영상과는 완전히 다른 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는 과거의 김정일 후계자의 위대성 교양과 학습 방식에 훈련된 북한주민들에게는 위대성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당성 : 최소한의 정당성, 현실과 실천에서 아직 증명되지 않음.

-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에 대한 인정 가능한 정당성은 기본적으로 혈연과 외모, 권력의 확인라는 세가지 사안으로 최소한의 정당성에 해당한다. ‘최소한의 정당성2011년 한해동안 확실하게 증명과 인식이 되었으며 여기에 플러스 요인으로 된 것은 검열과 단속, 처벌 등을 통한 강력한 통제력이다. 김정은은 단속, 처벌 등의 숙청과정에서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혈연과 외모는 후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부적인 것으로 얼굴 성형수술에 관한 뉴스가 사실이라면 천부적인 것마저 조작된 것으로 시간에 따라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2011년 김정은은 후계자로서의 정당성에 대해 스스로의 자질과 능력으로 증명을 하지는 못했다. 이 또한 급변사태나, 김정일 사망 등의 환경에 노출될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업적 : 선전업적(가상의 업적)은 있으나 현실업적은 없다.

- 통치의 리더로서 김정은은 올해에 평양시 건설과 주민통제, 식량난과 외화난 등의 측면에서 업적을 쌓으려 노력했다. 권력의 측면에서는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발의 효과를 지속, 확장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었으며, 주민통제에서는 공포와 불안을 통해 사회안정의 업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김정은의 업적은 모두 선전차원에서는 가능했으나 현실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평양시 건설은 지방주민들에게 불만을 증폭시켰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사건은 시간이 지속되면서 그 진실이 알려져 효력이 소멸하고 있다. 또한 식량난과 외화난 등의 권력층과 주민을 상대로 한 업적은 거의 효과가 없고 식량의 경우 마이너스로 되기까지 했다. 식량의 경우 내년 강성대국 행사를 위한 준비의 측면도 있지만 지나친 빈궁이 내년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주민반을 불렀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올해에 업적은 쌓지 못하고 선전만 했으며 한가지 긍정적인 것이 있다면 내년 강성대국 행사를 위해 주민들이 미련과 기대를 하게 만드는 측면에서는 일부의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3) 김정은 권력에 대한 인식

- 김정은은 2011년에 자신의 권력이 실체도 있고 파워도 있지만 그 실체와 파워가 김정은의 독자적이고 공고화된 권력이라는 것에는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

- 2011년에 자신이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김정일의 권력을 대행하고 주도하는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김정은의 이름으로 지시가 하달되지만 김정일의 승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지시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은 김정은의 무자비함과 가혹함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는 곧 김정은이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 것이다.

- 2011년에 김정은이 거둔 성과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있다면 김정은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확실하게 인지시켜 복종의 능력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2011년에 보여준 권력에 대해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은 김정일이 있기 때문에, 승인했기 때문에라는 인식은 지우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김정은의 권력이 김정일로부터 외형적, 절차적으로는 이양이 됐으나 1970년대 후번과 1980년대 초반의 김정일 권력처럼 확고하고 주도적이며, 주체적인 권력으로 되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3. 2012년 김정은 이미지 인식의 변화 전망

 

- 2012년에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보다 확고하고 내실화 하는데 집중할 것이며 순간적 풍요와 만족, 선전과 체험으로 자신의 늦어진 권위와 정당성, 업적이라는 3대요소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 김정은은 경제와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는 강성대국 행사 과정에서 가능한 업적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할 것이며 이 효과를 지속시켜 권력의 내실화와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에 이용하려 할 것이다.

- 2011년 김정은은 후계자인 것은 확실하고 권력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시켰다. 그러나 권력을 인정시켰지만 북한주민들은 올해 1년동안에 화폐교환으로 인한 불만과 분노는 축소된 반면에 김정은의 우상화에서는 초기의 교육 효과가 크게 감소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 2012년 북한은 강성대국 이벤트를 하겠지만 최대 3개월 이상은 유지하기 어려운 한시적인 것으로 될 것이고 이후에는 김정은 이미지는 권력에 집착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이 증폭하는 반면에 후계자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의심하는 측면이 강화될 것이다.

- 2012년에 경제상황, 특히 식량, 전력, 교통 등의 문제들에서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김정은의 위상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이는 2009년의 화폐교환에서 시작되어 2010년의 150일전투를 비롯한 중대업적 시도의 실패, 2011년 공식적인 권위와 권력의 각인에서 실패에 이어 2012년의 강성대국 실패로 김정은은 위대성과 정당성, 업적의 3대측면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2012년 말에 가면 권력에서는 강력한 공포와 두려움을 야기하겠지만 이는 내부의 반발과 갈등, 모순, 저항 등과 적절하게 혼합되면 체제 위기의 에너지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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